2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공정위는 브로드컴 미국 본사와 한국, 싱가포르 지사 등 4개사가 공정거래법상 지위를 남용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잠정 191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브로드컴이 삼성전자에 이른바 '갑질'을 한 혐의를 인정한 것이다.
사건의 시작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전자는 2018년까지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 스마트폰 부품 90% 이상을 브로드컴에 의존해 왔다. 2019년부터 삼성전자가 부품 공급 다원화를 위해 브로드컴 경쟁사인 퀄컴 등 부품을 일부 채택하자 브로드컴이 부당한 장기계약을 강요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2021년 1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3년간 매년 7억6000만 달러(약 1조원) 이상 부품을 사지 않으면 브로드컴에 차액을 물어주는 계약을 맺었다. 브로드컴은 삼성전자의 주문을 받지 않거나 생산을 중단하는 등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했다. 삼성전자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부품을 과다 구매한 탓에 수천억원대 피해를 봤고 퀄컴 등 고객사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
공정위는 2021년 브로드컴에 대한 조사를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그러나 브로드컴은 올해 초 공정위 제재를 피하기 위해 동의의결제도를 제안했다. 동의의결제도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받는 사업자가 거래 상대방에게 끼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자진해서 시정방안을 마련하고 이행하도록 하는 제도다.
브로드컴은 200억원 규모의 상생기금 조성 및 삼성전자에 대한 기술 지원 등 자진 시정안을 담은 동의의결안을 제출했으나 공정위는 지난 6월 이를 기각했다. 브로드컴이 내세운 동의의결안이 삼성전자가 본 피해에 상응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공정위는 브로드컴의 행위가 시장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로 보고 시정명령과 과징금 191억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다만 브로드컴이 지난 2분기(4~6월) 매출 61억5000만 달러(8조2000억원)를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과징금 191억원은 지나치게 적다는 평가도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3년간 본 피해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아 '반쪽짜리 처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삼성전자는 브로드컴과의 장기 계약으로 인해 타사 부품을 이용하지 못하고 상당 과잉 재고를 떠안았다며 약 3억2630만 달러(4375억원) 가량 피해를 봤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공정위 제재로 향후 삼성전자가 브로드컴을 상대로 피해 보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한다면 유리하게 적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16년 1조원대 과징금이 부과된 퀄컴 소송에 버금가는 대규모 국제 소송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점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