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3일(이하 현지시간) 열리는 대만 정부 제16대 총통 선거를 앞두고 TSMC와 반도체 업계가 세계 각국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변화될 양안 관계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까지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중국시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친미 성향인 라이칭더 민주진보당(민진당) 후보가 33% 지지율로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30%)를 3%포인트(p) 차이로 근소하게 앞서며 경합을 벌이고 있다. 박빙의 승부를 벌이는 탓에 선거 판세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라이칭더 여당 후보가 승기를 잡는다면 양안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중 색채가 강한 라이칭더는 일찍이 "'하나의 중국'을 수용하면 중화민국을 지키지 못한다"며 특히 경제 부문에서의 탈(脫)중국을 주장해 왔다. 중국은 이를 겨냥하듯 경제 보복과 군사 위협으로 맞불을 놨다. 민진당이 집권을 이어갈 경우 중국의 대(對)대만 경제 제재는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허우유이 후보가 정권 교체에 성공한다면 대만 반도체 산업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민당은 대만 경제가 지나치게 반도체에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친중 성향이 짙은 국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지정학적 리스크는 줄일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중국이 대만 반도체 기업들을 통제, 소위 말해 '쥐락펴락'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TSMC가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대만, 즉 거취를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거물'인 TSMC의 투자 향방도 불명확해진다. TSMC는 그동안 민진당 기조에 발맞춰 미국의 대중 반도체 압박에 동참하며 북미 투자를 가속화했다. 2023년 3분기 TSMC 경영보고서에 따르면 TSMC 매출 비중은 △북미 69% △중국 12% △아시아·태평양 8% △일본 6%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5% 등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미국의 수요가 나머지 지역의 합산보다 더 큰 셈이다.
이번 선거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점쳐진다. 국민당 후보가 당선되면 미국의 중국 고립화 기조는 한층 뚜렷해질 전망이다. TSMC, 더 나아가 반도체 공급망을 통제하려는 중국에 맞서기 위해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국내 기업들은 이도저도 못하는 '샌드위치' 신세가 될 것이라는 평가다.
민진당이 재집권했을 땐 TSMC가 국내 기업들의 한층 강력한 견제 대상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앞서 TSMC는 민진당 지원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영원 흥국증권 연구원은 "현 민진당의 집권 시점인 2016년 이후 8년 동안 반도체 산업과 TSMC는 크게 성장했다"며 "대만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24.8%에서 지난해 38.4%로 늘었고 TSMC는 대만 증시 시가총액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양안 관계가 경색되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붕괴해 국내 기업들이 작년과 같은 악순환을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어느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양안 관계에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는 "민진·국민당 어디 쪽 후보가 당선돼도 양안 관계는 큰 폭에서 변화 없을 것"이라며 "TSMC는 (국민당이 당선되더라도) 기존과 같은 수준에서 미국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