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K-게임을 선도하는 국내 게임 업체들이 지난해 영업이익이 줄거나 적자를 내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게임 콘텐츠 산업은 한때 '수출 효자'로 불리며 고속 성장해왔으나 중국의 게임 산업 발전과 국내 게임 산업 규제로 이중고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 게임사들의 추격으로 안방 시장을 내줄 위기에 몰린 데다, 게임 산업을 향한 정부의 규제 수위가 보다 높아지면서 3N(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과 같은 대형 게임사까지 위기를 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3년 상반기 콘텐츠 산업 동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게임 산업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9% 감소한 9조3980억원으로 집계됐다. 게임 산업 반기 매출 10조원이 무너진 것은 2021년 상반기 이후 처음이다. 수출액도 같은 기간 5.7% 감소한 34억4601만 달러(약 4조5860억원)로 빨간불이 켜졌다. 게임 산업 종사자 수도 8만2225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0.6% 감소했다.
한때 게임업계의 주력 콘텐츠였던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게임들이 성장동력의 한계에 이르면서 더 이상 '리니지라이크'식 게임이 사용자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게 됐다. 또한 게임업계의 캐시카우였던 확률형 아이템뽑기 일명 '가차뽑기'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철퇴를 맞으며 지난 3월 22일부터 정보 공개 의무화로 수익성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경쟁력 있는 게임을 개발해도 규제로 인해 시장에 나올 수 없는 일이 반복된다면 누가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기 위해 뛰어들겠나”라며 “게임 산업 역사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부는 게임을 부정적이고 사회악의 축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진흥책 수립에 앞서 인식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고 비판했다.
윤석렬 정부 출범 초기부터 ‘K-콘텐츠 육성’을 외쳤으나 게임 산업 진흥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또한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게임 산업을 들여다보며 규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이어서 업계은 깊어만 가고 있다.
◆ 웹보드 규제 완화에 쏠리는 관심...시장 회복 효과는 미미
정부가 게임 산업을 향한 규제 강도를 높이는 가운데 웹보드 게임의 규제 완화 여부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게임 이용자 권리 향상과 현안 규제 개선을 통한 자율 확대 등에 방점에 두고 진흥책 수립에 돌입했다.
구체적으로 △웹보드 게임 규제 재검토 △경품 규제 개선 검토 △메타버스 가이드라인 등에 대한 규제 개선 등을 들여다봤지만 지난해 정치권을 중심으로 불거진 코인 게이트와 게임 이용자 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최근 정부의 행보를 미뤄 볼 때 웹보드 규제 개선이나 P2E(Play to Earn, 돈 버는 게임)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업계에 따르면 '고포류(고스톱, 포커)' 웹보드 게임의 월 결제 한도를 70만원으로 규정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산업법) 시행령이 오는 7월 종료된다. 시행령은 사행성 우려와 이용자 과몰입 방지를 목적으로 2014년 도입됐다. 도입 당시 30만원이었던 월 결제 한도는 2016년 50만원으로 늘었고, 2022년부터는 70만원 한도로 게임이 운영되고 있다.
해당 규제로 인해 국내 웹보드 게임 시장은 성장이 뒷걸음질 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가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6000억원 수준이던 국내 웹보드 게임 시장 규모는 2014년 2000억원으로 크게 내려앉았다. 2015년엔 1500억원까지 떨어졌다.
관련 게임 산업도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 도입 직후 해당 게임 부문 매출이 3774억원 감소했고, 이에 따른 영업이익도 2466억원 급감했다. 규제 완화에 따른 회복 효과는 미미했다. 2015년 6340억원 규모였던 웹보드 게임사 게임 매출은 2016년 6945억원으로 600억원 가량 상승했다. 보고서는 “법적 규제는 온라인 시장을 급격히 위축시킨 반면, 규제 완화의 시장 회복 효과는 미미했다”고 분석했다.
국내 웹보드 게임 시장이 주춤하는 동안, 관련 해외 시장은 확장을 거듭했다. 글로벌 웹보드(소셜카지노) 시장 규모는 2015년 34억6000만 달러(약 4조6000억원)에서 2017년 44억4000만 달러(약 5조9000억원)로 커졌다. 2025년엔 85억 달러(약 11조2803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 '해외 게임사 국내 대리인 제도' 시행을 앞두고 풀어야 할 과제
해외게임사의 과도한 과금 유도나 일방적인 서비스 중단으로부터 국내 게임 이용자를 보호하는 '해외게임사 국내 대리인 제도'가 시행을 앞두고 있다.업계는 이용자 보호를 위한 정부 행보를 반기면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진행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에서 '게임 이용자 권익을 높이는 게임생태계 조성'을 주제로 다양한 방안을 공개했다. 이 중에는 올해 1분기 중 해외게임사 국내대리인 제도를 게임산업법과 전자상거래법에 도입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업계는 정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국내 이용자 보호는 물론 국내 게임사가 호소하는 역차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됐다는 반응이다. 다만 해외게임사 대리인 제도가 실효를 내기 위해서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살펴보면 해외게임사 국내 대리인 제도는 게임산업법과 전자상거래법에 국내에 주소 또는 영업장이 없는 해외게임사에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를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다만 여기에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항목이 포함됐다. 업계가 지적하는 부분은 이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자'란 구간이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게임사가 별도 법인 명의로 국내에 게임을 선보이는 식으로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를 회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게임 관련 관계자는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지 않으면 게임을 출시할 수 없는 것인지 여부와 제도 준수 여부는 어떻게 모니터링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그간 국내에 지사를 두고 게임을 서비스 하다가도 갑자기 서비스를 종료하며 지사 인력까지 철수시키는 게임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중국 게임사들이 안방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해외 게임사와 국내 게임사 간 역차별 문제 역시 K-게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는 게임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종료하는 ‘먹튀 게임’을 규제하고 이를 위한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외 게임사의 먹튀 예방은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방치형 역할수행게임(RPG) ‘버섯커 키우기’는 중국산 게임 중 최초로 국내 양대 애플리케이션 마켓에서 동시 1위를 차지하는 등 무서운 기세로 규제의 틀에 갇혀있는 한국 게임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국 시장을 공략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인기와 달리 버섯커 키우기는 환불 관련 논란과 이용자 소통 부재로 뭇매를 맞고 있다. 유일한 공식 소통 창구인 네이버 라운지에는 고객센터 접촉 경로 안내나 문의 접수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버섯커 키우기를 국내에 서비스하고 있는 조이 나이스 게임즈는 중국 게임 개발사 4399의 해외 퍼블리싱 브랜드다. 싱가포르에 설립한 별도 법인을 통해 우회적으로 국내 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4399는 국내에 한국법인을 두고 있는데 앞서 ‘4399코리아’를 통해 역사 왜곡과 표절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부정적 이미지 탈피하고자 조이 나이스 게임즈로 국내 시장에 진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게임업계에는 "애초에 먹튀를 염두하고 출시하는 해외 게임사에게 한국의 규정은 어기면 그만"이라며 "국내 대리인으로 지정된 곳의 인력 구성은 어떻게 됐는지를 확인하고 신고된 주소지와 실제 대리인 사무실 일치 여부 등을 모두 고려하는 엄격한 대리인 지정 조건을 내걸고 주기적인 단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