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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기자수첩] 한화오션 '꽃놀이패' 노림수…'대마불사' HD현대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임효진 기자
2024-03-15 11:25:39

한화오션·HD현대 'KDDX 전면전'

한편에선 한화엔진·한화해운 준비 중

산업부 임효진 기자
[산업부 임효진 기자]
[이코노믹데일리] 바둑은 세상을 읽기 좋은 프레임이다. 지난해 5월 한화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함으로써 조선업이란 바둑판에 뛰어들었다. 판세는 애초에 기울어 있었다. 한화오션은 ‘하수’였고, 그곳엔 ‘고수’ HD현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접바둑이란 것이 있다. 하수가 고수를 상대할 때 4점, 8점 먼저 두고 시작한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하수를 상대로 고수가 접바둑을 둔다. HD현대가 셀 수 없이 많은 돌을 깐 곳에 한화오션이 들어간 것이다.

HD현대의 ‘자충수’가 기회로 찾아왔다.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군사기밀 누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방위사업청이 HD현대중공업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지 않기로 하면서 곤궁에 처했던 HD현대는 활로를 찾았다.

한화오션은 정석대론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KDDX 개념설계 유출 혐의로 HD현대중공업 임원을 경찰에 고발했다. 방사청의 결정에 정면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조선업계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었다. 격식을 깬  ‘파격’이자, 승부를 뒤집기 위한 ‘묘수’였다. 

위기십결(圍棋十訣)에 세고취하(勢孤取和)라 했다. 순류에 역류를 일으킬 때 즉각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나의 순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그러니 나의 흐름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는 자세야말로 최고의 방어수단이자 공격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창호 9단의 말이다.

HD현대는 흔들리지 않았다. 함정 사업은 전체 매출의 10% 정도에 불과했다. 조선업의 핵심은 상선이다. 상선 부문이 잘 되면 함정 부문은 자연스레 잘 된다. ‘대마불사’라 했다. HD현대는 치뤄야 할 죗값을 받고 실력으로 승부한다는 흔들림 없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포석을 깔며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화엔진을 인수했고, 나아가 친환경 해운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한화오션 입장에서 KDDX 수주전은 이기든 지든 상관없는 ‘꽃놀이패’일 가능성이 크다. 확실한 것은 없다. 다만,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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