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인더스토리] SK 가계도 '그 이름'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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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성상영·박연수 기자
2024-06-20 17:26:25

최태원 회장 '혼외자' 논란 부른 SK 가계도

'SK 고택'에 그대로…"지우면 더 큰 오해"

18일 확인한 경기 수원시 SK 고택 전시관 SK 가계도 사진성상영 기자
18일 확인한 경기 수원시 SK 고택 전시관 'SK 가계도' [사진=성상영 기자]
[이코노믹데일리] <편집자주> 인더스토리는 현장을 뛰는 산업부 기자들의 취재 뒷이야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지면에 미처 담지 못한 생생한 후기를 쉽고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지난 4월 SK그룹은 경기도 수원시 SK고택을 새롭게 단장해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지금도 온라인 예약 서비스를 통해 관람을 신청하면 누구나 SK고택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무료로 말이죠. 

SK고택은 SK그룹 모태인 선경직물을 창립하고 키워낸 최종건·최종현 선대회장이 나고 자란 곳입니다. SK그룹이 1970년대부터 추진해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로 완성한 '섬유에서 석유까지 수직계열화'라는 구호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선경직물에서 시작해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회사, 국내 1위 이동통신사, 국내 유일 내국인 대주주 정유회사를 거느린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역사가 담긴 곳인 만큼 그 자체 만으로도 SK그룹의 공식적인 사료(史料)인 셈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곳이 사람들의 입길에 올랐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으로 인한 위자료 20억원과 재산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SK고택 안 전시관에 붙은 가계도가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최태원 회장 자녀로 기재된 한 사람의 이름 때문이었는데요. 최 회장과 그의 배우자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이에 태어난 최윤정·최민정·최인근 세 사람에 더해 또 한 명의 이름 '최시아'였습니다. 2010년생인 최양은 최 회장과 '사실혼 배우자' 관계로 알려진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의 자녀로 알려졌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2015년 최 회장이 한 신문에 편지를 보내면서 공개됐습니다.

최 회장이 신문사에 보낸 편지가 풍문으로만 떠돌던 최 회장 혼외자의 존재를 공식화한 것이라면, 최양의 이름을 올린 SK고택 가계도는 혼외자가 SK 가문의 일원으로 명문화됐다는 걸 의미하는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는 지난 4일 본보가 SK고택 가계도를 보도([단독] SK가계도에 등장한 '그 이름'…"최태원-노소영 이혼 판결 영향 줬을 듯")한 이유였고 이후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최양의 이름만 눈길을 잡은 게 아닙니다. 

1대 최학배 공과 2대 최종건·최종현 선대회장 대까진 배우자가 함께 기재됐지만 최태원 회장 대인 3대부터 배우자 이름은 빠진 채 자녀 이름만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최 회장과 노 관장 간 이혼 소송 항소심 재판부가 1조3808억원에 이르는 재산 분할 결정을 내린 뒤 나온 SK고택의 가계도 기사는 향후 SK그룹 승계 구도에 최 회장의 혼외자 문제가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낳았습니다. 물론 최 회장이 지난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계획은 있지만 아직 공개할 때는 아니다"라고 밝힌 것처럼 '그 답'은 어디까지나 최 회장의 마음 속에 있을 겁니다.

어찌됐건 이혼 소송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으니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지난 17일 언론을 대상으로 항소심 판결 오류를 지적하는 설명회를 열었습니다. 설명회 압권은 계획에도 없던 최 회장의 깜짝 등장이었습니다. 이미 단상에 올라 '6공 특혜설'을 설명하던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최 회장은 설명회에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 사과드린다"며 90도로 허리를 숙인 뒤 "이번 판결과 관계없이 맡은 바 소명인 경영 활동을 충실히 잘해서 국가 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설명회 이후 문득 궁금했습니다. SK고택의 그 가계도가 어떻게 됐을지. 반신반의하는 궁금증을 안고 지난 18일 수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가계도엔 여전히 최양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한 번 올라간 이름을 지우는 게 어쩌면 더 오해를 부를지도 모르니 이해도 됐습니다.

SK고택 방문 전후로 만난 다른 대기업 관계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습니다. 1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그걸(가계도를) 고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냐"며 "당사자(SK그룹)는 논란과 상관없다고 하겠지만 오비이락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래저래 SK입장에선 난처한 상황이 됐습니다. '까마귀가 날아 배가 떨어지건', '배가 떨어질 때 까마귀가 날았건' 간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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