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한 사람이 누군가와 통신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잠시 후 저 멀리 상공에서 소음을 내며 무언가 날아오더니 표시된 공간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3.1㎞ 떨어진 영월터미널 인근 편의점에서 구매한 캔 커피가 드론으로 배달되는 순간이었다. 드론에 실려 5분 만에 도착한 캔 커피는 여전히 뜨끈했고 초겨울 추위를 잊게 하는데 충분했다.
이날 드론으로 캔 커피 배달을 주문한 주체는 국토교통부였다. 정부가 드론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며 배달 상용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영월 드론공역 시연장에 기자,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등을 모아 이 같은 이벤트를 선보였다.
성공적으로 배달된 캔 커피 맛에 도취돼 있을 때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배달에 나선 18㎏ 회전익 드론 제조업체 대표의 말이었다. 그는 "상용화에 나서기 전 정부가 드론에 대한 규제를 강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면 해당 산업 육성을 위해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기존 업계 관계자들의 말과는 전혀 다른 정서였다.
이유를 물었다. 그는 "새로운 기술이 산업화돼 정착하기 전까지 대중은 새로운 기술에 쉽게 신뢰를 주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자칫 사고라도 나면 해당 기술과 산업 자체가 망가질 수 있다"고 했다.
오래 전 드론이 배달한 캔 커피 이야기를 꺼낸 건 최근 사망 23명 등 31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도 화성의 일차전지 화재 사건 때문이다.
전력공급원이 화석연료에서 전기로 전환되는 '전기화 시대'에 전지 또는 배터리는 중요한 에너지원이 됐다. 그저 에너지원의 차원에서만 배터리를 볼 게 아니었다. 스마트폰, 전기차, 전기선박, 전기항공까지 이동이 가능한 모든 기기에 배터리는 배터리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사용처가, 사용자가 늘어나니 배터리 사고는 잊을 만하면 터져 나왔다. 배터리 폭발을 대중에 각인시킨 건 스마트폰이다. 폭발 사고가 발생한 특정 스마트폰은 일부 항공사의 기내 반입이 금지되는 수모를 안기도 했다.
신조어도 만들어 졌다. 수백개 셀로 이뤄진 전기차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수송 체계의 혁신을 선도하던 이미지는 사라지고 '전기차 포비아'라는 원치 않은 별칭이 붙여졌다. 예전엔 경험하지 못한 상황도 맞닥뜨렸다. 폭발이 일어났고 섭씨 1000도 이상의 열폭주까지 생겼다. 이동식 소화 수조라는 새로운 형태의 화재 진압 장비도 등장했다.
최근 화성에서 발생한 일차전지 공장 화재는 배터리 폭발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 사고였다.
그런 사고를 접하면서 '엄격한 규제'를 강조한 드론 회사 대표의 말이 떠오른 건 어쩌면 당연했다. 이런 말도 덧붙였다. "군용 드론을 제작할 때와는 확실히 환경이 다르다"는 말.
그의 말은 전쟁과 불화가 인류문명을 발전시킨다는 의미에서 나온 '전쟁발전론'에서 비롯했다. 근거는 명확하다. 인터넷과 위성항법시스템(GPS), 핵폭탄은 전쟁이 만든 기술이었다. 드론도 무기로 시작됐다.
전쟁 때 기술은 그저 국방력을 높이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저렴한 가격과 기능에만 집중됐다. 전장에 곧바로 투입되려면 개발 속도도 중요했다. 그래서 전쟁발전론을 가속주의 일종으로 보기도 했다. 개발 수준은 높아지고 개발 속도는 빨라졌지만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전쟁발전론은 배터리도 비껴가지 못했다. 전 세계 국가들이 기존과 다른 형태의 전쟁을 치르면서 배터리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온난화라는 전쟁터에서 배터리가 화석연료 대체재로 부각되면서다.
안전보다 개발을 우선으로 여기던 과거 전쟁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전지의 시점으로 이번 화재 원인을 바라보면 어떨까. 배터리 때문이 아닌 안전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사람' 때문이라는 전지(全知)적 전지(電池) 시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