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를 보러 왔다는 말에 영업사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고 최근 '전기차를 찾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아예 전기차 구매를 문의하는 소비자에게 내연기관차를 추천하거나 국내 기업의 배터리가 들어간 차량을 소개한다는 얘기를 덧붙이기도 했다.
◆국산·수입차 브랜드 6곳 전시장서 '배터리' 물어보니
배터리 제조사를 묻는 질문에 전시장 직원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린 곳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3사의 전시장이었다. 아우디 A전시장 영업사원은 전기차 제품군인 'e-트론' 중 한 차량을 소개하며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만 써 화재 걱정은 덜어도 된다"고 말했다. 반대로 BMW B전시장에선 iX3 차량을 지목하며 "어느 제조사 배터리를 쓰냐"고 문의하자 "중국 CATL"이라는 짧은 답변만 내놨다.
인천 전기차 화재 중심에 있는 메르세데스-벤츠의 C전시장 직원은 전기차를 추천하는 자체를 조심스러워 했다. 이 영업사원은 "화재 사고 이후 내연기관차 위주로 추천드리고 있다"고 전한 뒤 "어떤 차량에 어떤 배터리가 들어가는지 정확히 모른다"며 답변을 피했다.
국산 전기차 전시장은 차종마다 영업사원의 응대가 달랐다. 현대차 D전시장 영업사원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을 설명할 땐 카탈로그에 적힌 주행거리·용량 등 성능 정보 이외에도 배터리 제조사까지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나 소형 전기 SUV '코나'에 대해선 "중국산 배터리가 들어갔다"고만 할 뿐 제조사까지 알려주지는 않았다.
현대차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E전시장에서 만난 영업사원은 "제네시스 차량은 전부 SK온 배터리를 탑재했다"며 배터리 정보를 상세히 설명했다.
기아 F전시장에서는 앞선 벤츠 전시장처럼 내연기관차나 하이브리드차 구매를 권했다. 이 전시장 영업사원은 차종별로 국내 기업 배터리가 들어간 차량을 알려줬지만 "벤츠 화재 사고가 난 지금은 전기차를 추천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국토교통부는 인천 화재 사고로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되자 지난 8일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차와 제네시스는 이미 웹사이트를 통해 국내에 판매 중인 차량의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한 상태다. 기아와 BMW도 조만간 관련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다.
자동차 전시장 직원들이 중국산 배터리 언급을 자제하는 '샤이 차이나' 현상은 최근 확산된 중국산 배터리 불신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인천 전기차 화재 차량인 벤츠 EQE도 중국 파라시스의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 셀을 사용했다.
실제 NCM 배터리는 중국 기업이 기술적으로 열세인 분야다. CATL과 BYD 등 중국 배터리 업체는 가격이 저렴하면서 성능은 떨어지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개발·공급에 주력해 왔다.
이에 반해 영업사원들이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을 당당히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K-배터리' 3사는 NCM 기술 개발을 선도한 데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중국 기업보다 앞서 있다는 업계의 평가 때문이다.
NCM 배터리는 불이 났을 때 내부 셀 온도가 순식간에 1000℃ 이상으로 치솟는 열 폭주 현상을 얼마나 제어하는지가 관건인데, 국내 3사의 열 폭주 지연 기술 수준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열 폭주가 예상될 때 배터리 셀에 공급되는 전류를 차단하거나 방열 소재를 배터리 내부에 추가하는 식이다.
양산 시점 역시 국내 3사가 훨씬 빠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07년부터 NCM 배터리를 생산했고 SK온은 2014년 세계 최초로 양극재 중 니켈 비율을 60%까지 높인 제품을 양산하는데 성공했다. CATL은 2022년 들어서야 NCM 배터리를 양산했다.
모터스포츠 엔지니어 출신인 최영석 차지인 대표는 "배터리 화재는 외부 충격이나 내부 양극재·음극재를 나누는 분리막이 손상돼 발생하는 경우로 나뉜다"며 "국내 기업은 분리막을 다루는 기술이 앞서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배터리가 양품이라면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화재가 날 수 없는데 생산 노하우가 많지 않은 업체는 불량을 거르지 못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이나 아이오닉 5, 기아 EV6 등 LG에너지솔루션·SK온 배터리를 탑재한 국산 전기차에서도 불이 난 사례가 있는 만큼 전기차 전반에 대한 안전성 강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종훈 충남대 교수는 "배터리를 제어하는 장치인 BMS를 통해 화재 징후를 알 수 있지만 완성차 제조사에서 운전자에게 BMS 데이터를 상세하게 알려주지는 않는다"면서 "배터리 상태 모니터링 확대나 사용량·충전량 제한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