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월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단통법 폐지 법안은 이달 초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넘어간 상태다. 박충권 의원안은 단통법을 폐지하되 선택약정할인 등 통신비 절감과 관련한 조항은 전기통신사업법에 반영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2014년에 시행된 단통법은 통신사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단말기 가격 할인에 상한을 두면서 전 국민을 '호갱(호구와 고객을 합친 은어)'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상적인 경로로 스마트폰을 구매하면 기껏해야 10만~20만 원밖에 할인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출시된 애플 아이폰 16 프로 기준 공시 지원금을 최대(24만~45만 원)로 받기 위해서는 최소 13만 원에 달하는 고가 요금제를 사용해야만 한다.
◆단통법 10년, 음지화된 '성지'
이 때문에 일부 소비자는 기기 값을 공시 지원금보다 큰 폭으로 할인해주는 '성지'를 찾으려 발품을 팔고 있다. 성지는 단통법에 정해진 지원금 상한보다 많은 금액을 깎아주는 판매점을 말하는데 모두 불법이다. 판매점이 재량에 따라 판매 수익 일부를 떼어 가격을 낮추는 식이다. 이 때문에 통신사가 판매점에 지급하는 단말기 판매 장려금(인센티브)이 바뀔 때마다 '지원금 대란'이 일어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지역별 '시세표'라는 이름으로 '불법' 지원금을 반영한 가격표가 공공연하게 돌아다니는 실정이다. 서울의 한 자치구에 있는 판매점 시세표에는 출고가가 155만원인 아이폰16 프로 128기가바이트(GB) 모델을 불과 79만원에 판매한다고 돼 있다. 해당 판매점과 같은 조건으로 지급되는 공시 지원금을 한참 넘어 출고가의 절반 가격이다.
이러한 스마트폰 성지는 점점 음지로 숨어들고 있다. 몇 년 전까지는 서울 테크노마트 같은 대형 전자상가에 있는 판매점에서 불법 영업이 주로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떴다방' 식의 영업이 횡행하고 있다. 접근성이 좋은 지하철역 인근 상가 공실을 단기 임대해 간판 없이 반짝 영업을 하고 스마트폰 출시 시즌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방식이다. 스마트폰을 구매한 곳과 통신사에 등록된 영업점 정보가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해당 판매점이 떴다방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단통법 시행 이전과 비교해 통신사의 과도한 마케팅 비용 지출과 출혈 경쟁이 사라졌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판매점의 편법만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당장 스마트폰을 싸게 살 순 있겠지만 쓰지도 않는 요금제와 부가서비스에 비싸게 가입하는 등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엇갈리는 이해관계 어떻게 풀까
단통법 폐지에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상황이지만 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를 비롯한 관련 업계의 견해는 다소 엇갈린다. 제조사는 기기 판매량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이와 달리 SK텔레콤과 KT·LG유플러스 등 대형 통신 3사는 물론 이들로부터 망을 빌려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알뜰폰(MVNO·가상 이동통신망 사업자) 업체들은 단통법 폐지 논의가 마냥 반갑지 않은 분위기다.
통신사 입장에선 단통법이 폐지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가 포화 상태인 상황에서 통신 사업 매출을 올리려면 다른 회사 가입자를 뺏어와야 하는데 판매 장려금 등 마케팅 비용이 급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알뜰폰 사업자들은 통신 3사가 단말기 할인 폭을 늘리면 그만큼 알뜰폰의 저렴한 요금이 갖는 이점이 줄어들어 가입자가 이탈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회선 수를 기준으로 알뜰폰의 시장 점유율이 16.5%까지 오르며 사실상 성장세가 한계에 다다른 점도 이들 사업자의 걱정거리다.
각 업계가 다른 목소리를 내지만 단통법 폐지는 기정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올해 안에 단통법 폐지가 실현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단통법 때문에 통신사만 이득을 봤다는 의견에는 공감하기 어렵지만 정부나 국회에서 단통법을 폐지한다면 사업자로선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