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캄보디아에 기반을 둔 국제 범죄조직의 ‘검은돈’ 160억원이 지난 3년간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를 통해 버젓이 오갔다. 거래소들은 “선제적으로 대응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제재 발표 이후에야 서둘러 차단에 나선 ‘뒷북 대응’이었다. 단순한 도덕적 해이를 넘어 현행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구조적 공백이 빚어낸 예고된 사태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지난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실에 따르면 국내 5대 거래소는 2023년부터 올해 10월까지 국제 범죄조직 ‘후이원 그룹’이 운영하는 해외 거래소와 약 160억원 규모의 가상자산을 주고받았다. 이 중 99.9%가 자금세탁에 활용되기 쉬운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였다.
자금 이동이 본격화된 시점은 2024년. 공교롭게도 코인원(2023년 11월), 빗썸(2023년 12월), 업비트(2024년 6월) 등이 경쟁적으로 테더를 상장한 시기와 정확히 맞물린다. 외환 규제 회피 논란에도 ‘글로벌 기축통화’라는 명분으로 상장을 서둘렀지만 결과적으로는 국제 범죄조직의 ‘자금세탁 고속도로’를 열어준 셈이 됐다.
거래소들은 “법이 허용한 범위에서 최대한 조치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업비트는 “지난 3월 자체 모니터링으로 위험을 감지해 입출금을 차단하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고 빗썸 등도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가 후이원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한 5월 초에 입출금을 차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이미 범죄 자금이 상당 기간 국내 시장을 오간 뒤의 ‘사후 조치’일 뿐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거래소의 대응 이전에 법·제도 자체가 사실상 ‘무장해제’ 상태였다는 점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현행 특금법은 거래소에 의심거래보고(STR) 의무만 부과할 뿐 후이원과 같은 ‘고위험 해외 거래소’를 사전 식별하거나 거래를 강제로 제한할 근거가 없다. 모든 판단과 책임이 거래소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져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거래소가 잠재적 수익 손실과 법적 분쟁을 감수하면서 특정 해외 거래를 먼저 차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도의 실패이자 금융당국의 직무유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은 거래소로부터 의심거래보고를 받았음에도 후이원의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거나 선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미국 재무부가 칼을 빼 들고 제재를 가한 뒤에야 국내 거래소들이 움직인 것은 우리 당국의 정보 분석력과 국제 공조 시스템이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를 드러낸다.
결국 이번 사태는 특금법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시급한 개정을 촉구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국내 거래소의 자금세탁방지 의무 전반을 점검하고 법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제는 가상자산 거래를 둘러싼 국제 공조 체계 강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제라도 ‘거래소 자율’이라는 미명 아래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를 멈춰야 한다. 미국 OFAC(해외자산통제국)처럼 범죄 연루 의혹이 있는 해외 거래소 명단을 국제 공조를 통해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국내 거래소들이 해당 대상과의 입출금을 즉시 차단할 수 있도록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또 거래소가 법에 따라 거래를 차단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면책 조항’도 필요하다. 이번 사건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로 끝나지 않으려면 제도적 허점을 조속히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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