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박경아의 잇슈 언박싱] 누가 이들의 '스윗홈'을 앗아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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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아 논설위원
2022-12-26 18:45:22

'빌라왕' 사망으로 드러난 전세금사기…피해자 대다수 20·30세대, 재발 방지장치 절실

박경아 논설위원

[이코노믹데일리] ‘인생 2회차’란 이색 소재의 JTBC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지난 25일 막을 내렸다. 자신이 다니던 회사 창업가가 살아있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의 손자로 태어난 주인공에게 미래를 안다는 것은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할아버지가 KAL 858기 테러사건으로 사망할 위기를 모면케 해준 대가로 주인공이 택한 것은 당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분당 땅이었다. 나중에 '천당 아래 분당'으로 불리던 그 분당 말이다. 

재벌가 손자 같은 판타지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반드시 다른 선택을 할 텐 데” 싶은 후회막심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지금 이런 마음이 누구보다 간절한 이들 중에는 얼마 전 사망한 ‘빌라왕’ A씨의 전세 세입자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재벌 창업주가 살던 그리 먼 과거도 아니다. 짧으면 몇 달, 길어 봐야 2년여 만에 ‘스윗홈’을 꿈꾸고 한 선택이 '전세 사기'란 악몽으로 변해버렸다. 

지난 12일 지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A씨는 2020년부터 2년 넘게 빌라와 오피스텔을 1139채나 매수했다. 연일 부동산 가격 상승 뉴스로 들끓었을 때다. 그는 당시 신축 빌라나 오피스텔의 경우 전세가가 분양가의 90% 혹은 그 이상이란 점을 악용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사망한 A씨 외에도 분양주와 부동산 브로커들을 수사 중인데, A씨가 자신의 돈 들이지 않고 그 많은 주택 보유자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분양가'에서부터 함정이 있었던 듯 하다. 분양주와 분양가 이하로 거래하고 전세 세입자에겐 실상과 다른 분양가를 제시하는 것이다.  
 
올해 들어 금리의 급상승으로 부동산 시장은 하락장으로 치달았다. A씨 보유 빌라와 오피스텔은 전세금이 집값보다 더 큰 깡통주택으로 전락했다. A씨 생전에도 임대차 계약 기간이 종료됐지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이미 200명이었다. A씨가 사망하면서 A씨 소유 빌라·오피스텔 전세 세입자들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현실적으론 전세금 돌려받을 길이 사라졌다. A씨는 종합부동산세 62억원도 납부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A씨 사망 후 온·오프라인이 분노로 들끓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번 사건 피해자들을 향해 “상속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지금 사는 곳에서 계속 지낼 수 있고 전세 대출금, 대출보증 연장이 가능해 당분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수습에 나섰다. 이어 2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전세보증금 피해 임차인 설명회에 참석해 정부 대책을 설명했고 국토교통부는 이달 30일부터 전세사기 대응 전담조직을 운영하기로 했다. 다수의 피해자가 살고 있는 서울시도 ‘1인 가구 전월세 안심계약 도움서비스’를 기존 5개 자치구에서 14개 자치구로 확대한다고 18일 밝혔다.

비단 이번 빌라왕 사안뿐 아니다. 지난해에는 세 모녀가 빌라 600 채를 쇼핑을 해 전세 사기 피해자를 양산했고, 이번 사건으로 다수 피해자가 발생한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선 지난 2019년에도 빌라 100채를 보유한 또 다른 빌라왕 사건이 있었다.

HUG 자료에 따르면 전세 보증금 사기 사건 피해자 4명 중 3명이 2030세대다. 왜 2030세대인가. 이들의 부동산 계약 경험이 적어서라고만 하지 말자.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이들이 특히 집값 대비 전세금 비중 높은 신축 빌라·오피스텔에 끌리는 이유는 아파트 수준은 아닐지라도 세련된 인테리어에 깔끔한 주거 환경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 결혼도, 아이도 포기하는 'N차 포기' 세대들에게 생활 환경이 조금 더 쾌적하길 바라는 걸 욕심이라곤 하지 말자.

보통의 부동산 매수자는 한번 사서 들어가면 팔고 나오기 어려운 빌라나 오피스텔을, 설사 전세금 많이 받는 신규 분양이라 해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선수'일수록 사서 들어갈 때 출구 전략을 따지는 곳이 부동산 시장이다. 드나들기 어려운 시장에서 수십 수백 채를 한 명이 분양 받는다? 결국 전세 사기 아니면 수익 날 길이 없어 보인다. 부디 또 다른 빌라왕이 나타나지 않기를….사후 약방문 격인 정부의 여러 대책보다 사전 예방이 절실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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