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미국 정부가 오는 2032년까지 현지에서 판매되는 신차 3분의2를 전기차로 대체하겠다는 규제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이어 현대자동차그룹을 포함한 국내 자동차, 배터리 업계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오는 12일(현지시간) 자동차 배출가스 한도를 제한하고 전체 판매 차량 중 절반 이상(67%)을 전기차로 채우도록 사실상 강제하는 새로운 규제안을 발표한다. 글로벌 톱3(Top 3) 자동차 시장을 보유한 미국의 규제로 업계 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EPA가 이같은 규제에 나서는 것은 탄소 감축 목표 때문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 신차 중 전기차는 5.8%에 불과하다. EPA 측은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탄소중립(탄소 순배출량 0) 미래를 가속하고 인류와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새 기준을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미국 규제안이 권고에 그칠지 강제 사항이 될지를 살펴보고 있다. 판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줄지 여부도 정해지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목표를 달성한 업체에 인센티브를 주는 안이 유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현대자동차(제네시스 포함)와 기아는 지난해 미국에 147만4424대를 판매했고 이 중 전기차 판매량은 5만8028대로 비율로는 3.9%였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실적 발표에서 친환경차 판매가 호조였다고 설명했지만 2032년까지 판매 비중을 67%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테슬라를 비롯한 몇몇 전기차 브랜드를 제외하면 미국 내 전기차 판매 비중이 10%를 넘어가는 곳은 드물다.
현대차는 지난해 증권사와 투자자 등을 상대로 한 인베스터데이 행사에서 오는 2030년까지 미국 내 전기차 판매 비중을 58%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기아도 지난 5일 인베스터데이에서 미국 내 전기차 판매 비중 목표를 47%로 설정하고 EV6, EV9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이 설정한 목표치도 60%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규제당국이 67%라는 수치를 제시한 것은 매우 급진적이라고 평가된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대부분을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한다. 차량 현지 생산이 전기차 보조금 지급 요건인 IRA 세부 규정에 영향을 받은 데 이어 이번 EPA발 규제도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리스, 상업용 전기차 판매 증대로 활로를 찾았지만 EPA 규제안이 시행되면 설비 자체를 전기차 위주로 재편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자동차 업계와 달리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계에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전기차 판매가 늘어나면 그만큼 배터리 수요가 늘고 생산 시설을 더 확충하면서 고정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미 EPA 규제안은 장애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브랜드 전동화를 가속화하는 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친환경차와 SUV를 중심으로 수익성을 높이고, 차종별 라인업을 갖춘다는 전략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