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G90은 다이너스티, 에쿠스의 계보를 잇는다. 제네시스 출범 후에는 EQ900으로 이어졌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현대차는 과거 그랜저가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진 시절 국산 기함에 대한 갈증을 달래주는 수준에 그쳤다. 지난 8일부터 3박 4일 동안 약 650㎞를 타본 G90은 벤츠 S클래스나 BMW 7시리즈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G90은 첫인상부터 존재감을 뿜어냈다. 유려한 곡선으로 강조한 볼륨과 제네시스 상징인 두 줄 램프가 전면에서부터 측면과 후면까지 그대로 이어지며 묵직한 품격을 보여준다. 후면으로 갈수록 완만하게 떨어지는 루프(지붕) 라인은 트렁크 끝단에서 살짝 올라간다. 뒷모습을 정면으로 보면 앞모습보다는 나즈막하다. 앞에서 무게감을 강조하느라 놓칠 수 있는 날렵함을 뒤에서 극적인 반전으로 잡아냈다.
승차감은 세련되면서도 편안했다. 앞뒤 할 것 없이 노면에서 전해지는 충격을 훌륭하게 걸러낸다. 마치 차량 하체가 요철을 수시로 읽어 어떻게 반응해야 가장 탑승자를 잘 만족시킬지 생각하는 듯했다. 갑자기 과속방지턱을 만나도 동승자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달리는 느낌은 매우 진중하다. 방음과 방진이 워낙 뛰어난 탓에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확실히 묵직하다. 그런데 속도계는 어느새 올라가 있었다.
G90 세단 모델은 오너 드리븐(직접 운전에 알맞은 차)과 쇼퍼 드리븐(의전용 차)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 시승차는 세단 모델에 '퍼스트클래스 VIP 시트(4인승)'와 사륜구동(AWD) 등이 적용된 풀옵션이었다. 기본 성격은 의전용에 가깝지만 쉬지 않고 서너 시간 운전해도 거뜬해 가족을 더 품위 있게 태우고 싶은 가장에게도 알맞을 듯했다.
분명 앞좌석에 있는 각종 장치는 운전자 중심으로 배치되는 대신 동승자나 뒷좌석 탑승객을 고려한 모습이었다. 이는 중형급 이상 차량의 특징이다. 그렇다고 운전자가 조작하기에 불편함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편의 기능이 많은 데 비하면 각종 조작부는 간결하면서 직관적인 편이다.
뒷좌석은 말 그대로 달리는 일등석이다. 부드러운 나파가죽 시트가 선사하는 착좌감도 일품이었지만 진가는 휴식 모드로 바꿨을 때 드러났다. 버튼 한 번만 누르면 1열 동승석이 앞으로 밀려나며 발판이 내려오고 상석 등받이와 레그레스트(무릎받침대) 등이 움직여 반쯤 누워 가는 자세로 변신했다. VIP가 아닌 사람도 이 자리에 앉으면 착각이 들 법했다.
국산 승용차 가운데 가장 비싼 차답게 감성조차 고급스럽다. G90에 적용된 하만 뱅 앤 올룹슨 스피커는 어떤 소리도 그냥 뭉개는 법이 없었다. 악기면 악기, 목소리면 목소리까지 선명하면서 풍부했다. 각종 내장재 역시 버튼을 빼면 생 플라스틱을 그대로 노출시킨 곳 없이 가죽이나 고급 직물로 마감했다.
제네시스 G90은 풀옵션 기준 1억4000만원이 넘어가는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한 번쯤 빌려서라도 타볼 만한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