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이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씨의 한국 송환을 최종 확정했다. 이로써 60조원 이상의 피해를 유발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권씨가 한국에서 재판을 받게 될 전망이다.
항소법원은 1일(현지시간)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한 판결문을 통해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권도형에 대해 한국으로의 약식 인도를 허용한 반면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은 기각했다"며 "이 결정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이 항소하지 않았으므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의 결정은 최종적이며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밝혔다.
권씨의 한국행이 확정된 배경에는 몬테네그로의 정치적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그동안 권씨의 미국 송환을 강하게 주장해온 안드레이 밀로비치 법무부 장관이 최근 개각을 통해 교체된 것이다. 밀로비치 전 장관은 "미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 파트너"라며 공개적으로 권씨의 미국 송환을 지지해왔다.
밀로비치 전 장관은 올해 1월 튀르키예 국적의 범죄자에 대한 튀르키예 정부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거부해 밀로코 스파이치 총리의 눈 밖에 났다. 그는 지난달 25일 단행된 부분 개각을 통해 사실상 경질됐다. 현지 일간지 비예스티에 따르면 밀로비치 전 장관은 이임 기자회견에서 오는 9월 25일 수도 포드고리차 시장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권씨는 지난해 3월 23일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지 1년 5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권씨는 위조 여권을 사용해 두바이로 출국하려다 적발돼 구금된 상태였다. 그는 테라·루나 폭락 사태 직전인 2022년 4월 한국에서 싱가포르로 떠난 후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 체포됐다.
한국 검찰은 권씨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 등 7개 혐의를 적용해 2022년 9월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미국 당국도 증권 사기, 상품 사기 등 8개 혐의로 권씨를 기소했으나,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이 시기적으로 앞섰다는 판단에 따라 한국 송환이 결정됐다.
항소법원은 "1심은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이 미국에 비해 순서상 먼저 이뤄진 것으로 판단했다"며 "이에 따라 한국의 요청을 우선적으로 판단하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기각한 것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권씨의 송환 시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권씨의 몬테네그로 변호인인 고란 로딕은 "현지 당국이 인터폴의 도움을 받아 한국 송환을 준비할 것"이라며 "가능한 한 빨리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가상자산 시장의 규제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테라·루나 사태로 전 세계 투자자들이 입은 피해액은 400억 달러(약 5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권씨와 테라폼랩스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증권 사기 혐의로 민사 소송을 당한 상태다.
한편 권씨는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처벌 수위가 낮은 한국 송환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경제사범 최대 형량이 40년인 반면, 미국은 개별 혐의에 대한 형량을 합산해 100년 이상의 징역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로 권씨의 한국 송환이 확정됐지만, 그의 법적 책임을 묻는 과정은 이제 시작이다. 한국 당국은 권씨가 귀국하면 즉시 구속 수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규제와 투자자 보호 방안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