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가상자산 거래소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한때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하며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업비트가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가 가상자산 시장의 독점 구조를 정조준하고 있으며 빗썸과 코인원 등 경쟁사들이 점유율 확대에 나서면서 시장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제 '1강 체제'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경쟁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업비트의 거래상 지위 남용 여부를 조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역시 가상자산위원회를 구성해 구조적 문제와 독과점 이슈를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업비트가 주도했던 시장 구조에 본격적인 개입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코인 수, 예수금, 매출액, 수수료 등 모든 측면에서 업비트가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며 "독과점 상태가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비트의 연간 수수료 수익이 1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 빗썸의 반격... "수수료 제로" 카드로 시장 판도 흔들어
업계 2위인 빗썸은 업비트의 독주 체제를 타파하기 위해 수수료 무료 정책이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내세우고 있다. 10월 1일부터 시작된 이 정책은 28일까지 연장되며 빗썸은 점유율을 40.7%까지 끌어올렸다. 반면 업비트의 점유율은 57.7%로 하락했다.
뿐만 아니라 빗썸은 최저 출금 수수료를 전 자산군으로 확대하고 신세계그룹과 협업해 100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지급하는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NH농협은행과의 제휴 은행 변경도 추진하며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코인원 역시 가상자산 예치금 이용료율을 연 2.3%로 인상하며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코인원과의 협력을 통해 비이자 수익 확대를 모색하며 가상자산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이는 가계대출 규제 속에서 은행의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려는 전략과 맞물려 있다.
◆ "1거래소-1은행 체제가 독점 키웠다"... 제도 개선 목소리도
업계에서는 업비트의 독점적 지위 형성 배경에 정부의 '그림자 규제'가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1거래소-1은행 체제'가 복수 은행과의 계약을 막아 시장 경쟁을 제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업비트는 2020년 케이뱅크와 제휴한 이후 급성장했다. 올해 7월 말 기준 전체 가상자산 시장 예치금 5조원 중 75%인 3조7000억원이 업비트-케이뱅크에 집중됐다.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뱅킹은 한번 시작하면 잘 옮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시중은행마다 다른 고객층을 보유하고 있어 복수 은행과의 제휴가 허용된다면 시장 경쟁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점 논란 속에서 업비트는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면서도 서비스 품질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16개 가상자산의 호가 단위를 조정하고 신규 거래 지원을 강화하는 등 고객 편의를 높이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업비트는 투자자 보호에도 적극적이다. 올 상반기 국내 5대 거래소 중 투자자 보호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정받아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가상자산 사업자' 4위에 올랐다. 또한 프랑스 분석업체 카이코의 조사에서는 8위를 기록하며 국내 독점 논란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상자산 시장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와 제도 개선이 향후 시장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핵심 변수로 꼽힌다. 특히 '1거래소-1은행 체제'의 변화와 독과점 조사 결과에 따라 시장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건전한 경쟁이 시장에 자리 잡으면서 수수료 경쟁을 넘어 서비스 품질과 투자자 보호에 집중하는 흐름이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제 가상자산 시장의 미래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 각 거래소의 전략적 대응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