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아시아개발은행(ADB)·국제통화금융저널(JIMF)과 공동 주최한 콘퍼런스의 기조연설에서 "한은은 주요국과 달리 직접적인 거시건전성 정책 수단과 미시감독 권한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와 정책 조율 과정에서 정책 강도나 방향에 이견이 있을 경우 정책 대응의 신속성과 유효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여러 기관이 정책 수단을 나눠 보유하고 있는 경우, 기관간 긴밀한 협력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획재정부와 한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이 4개 기관이 매주 정례적으로 만나 경제·금융 상황을 공유하는 이른바 'F4 회의'에서 정책 공조를 도모하고 있다.
'포용적 성장을 위한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의 재정·통화정책'을 주제로 열린 이번 콘퍼런스에서 이 총재는 지난해 8월 금리 인하 전환기 등을 사례로 들며 통화 정책과 거시건전성 정책 조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선 거시건전성 정책을 강화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안하고, 그 효과를 확인한 뒤 통화 정책 조정에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며 "정부와의 정책 협의를 통해 관련 규제 강화를 제안했다"고 언급했다.
당시 정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등 규제 강화 조치에 나섰고, 한은은 8월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후 서울 주택가격 상승세와 가계대출 증가세는 둔화하기 시작해 10월, 11월 연속으로 금리 인하를 단행한 바 있다.
이 총재는 "통화 정책과 거시건전성 정책의 유기적인 공조는 가계부채의 구조적 취약성이 큰 국가에서 통합적 정책 체계 적용의 유용성을 확인한 좋은 사례"라고 덧붙였다.
이날 이 총재의 이같은 발언은 최근 금융당국 조직 개편 논의 과정에서 한은이 꾸준히 거시건전성 관련 권한 확대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새 정부 출범 이후 국정기획위원회(국정위) 업무보고에서 DSR 결정 참여, 금융기관 단독 검사권, 비은행기관 자료 제출 요구권 등의 권한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시 건전성 감독 권한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은이 가계부채를 비롯한 시스템 리스크만 아니라 개별 은행의 자본비율 상태와 내부통제 현황 등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날 콘퍼런스에선 가계부채 수준이 높을수록 재정정책의 경기부양 효과가 제약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이예일 한은 부연구위원은 "가계부채 수준별 재정정책 효과는 국가별 차이가 있고, 한국 등 비기축통화국 그룹에서 비대칭성이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