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영IT온라인부
sang@economidaily.com
기사 제보하기
최신기사
-
포장지까지 규제하는 ESG 장벽에 기업들 '무방비'
유럽연합(EU)이 추진하는 강도 높은 환경 규제가 국내 기업의 수출을 가로막는 새로운 장벽으로 들어서고 있지만 기업들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응 여력이 없는 기업을 위해 정부 차원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 가이드라인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국내 수출 기업 205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해 25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EU의 주요 ESG 수출 규제에 대한 기업 인식 정도는 100점 만점에 42점에 그쳤다. 대응은 이보다 더 낮은 34점에 불과해 낙제 수준이었다. EU가 도입을 예고하거나 준비 중인 ESG 수출 규제 6가지와 관련해 각 항목별로 점수를 부여한 결과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ESG 수출 규제에 대한 인식 정도는 대기업 55점, 중소기업 40점으로 차이가 있었다. 대응 수준도 대기업 43점, 중소기업 31점으로 비슷했다. 그러나 대·중소기업을 막론하고 ESG 수출 규제에 문외한이거나 대응 노력이 부족했다. EU가 내세우는 수출 규제는 △탄소국경 조정제도(CBAM) △공급망 지속가능성 실사지침(EU CSDDD)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과 공시 기준(EU CSRD) △배터리 규제 △친환경 디자인 규정(ESPR) △포장재법(PPWR) 등이다. 기업이 가장 크게 부담을 느끼는 규제는 탄소국경 조정제도(48.3%, 복수응답)였다. 이 제도는 EU로 수입되는 역외 제품을 대상으로 탄소 배출 가격을 EU 배출권거래제(ETS)와 같은 수준으로 부과·징수하는 제도다. 지난해 10월부터 시멘트, 철강, 알루미늄,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품목에 시범 시행 중이다. 오는 2026년 1월부터 탄소국경 조정제도가 전면 시행되면 석유·화학, 플라스틱도 적용을 받는다. 탄소 감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제품은 EU 역내 판매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경쟁 제품 대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공급망 지속가능성 실사(23.9%)와 포장재법(12.2%)도 기업이 부담을 느끼는 규제다. 공급망 지속가능성 실사는 기업 경영 활동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기업 스스로 예방·완화하고 정보까지 공개토록 한 규제다. 또한 포장재법에 따르면 2030년까지 모든 포장에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써야 하고 최하 등급을 받은 제품은 아예 판매가 불가능해진다. 기업들은 ESG 수출 규제와 관련한 어려움으로 시설 교체와 시스템 구축 비용(53.7%)을 가장 많이 꼽았다. 애당초 업계 현실과 동떨어진 목표(37.6%)라는 의견도 많았다. 조사 대상 기업들은 규제 대응 계획과 방안을 수립하기 위한 교육, 가이드라인 제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EU를 중심으로 ESG 수출 규제가 갈수록 촘촘해지고 있다"면서 "우리 기업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현장에서 실제 적용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정책 지원과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4-03-26 15:26:29
-
-
-
-
-
-
-
[성상영의 뷰파인더] '슈퍼 주총' 1부 끝마친 산업계, 표 대결 '백태'
일주일에 이틀뿐인 꿀 같은 주말, 직장인들이 재충전하는 시간에도 산업 일선은 분주히 움직인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소식이 쏟아지는 요즘, <뷰파인더>는 바쁜 일상 속에 스쳐 지나간 산업계 뉴스나 취재 현장에서 보고 들은 시시콜콜한 얘깃거리를 들여다 본다. 지난 15일부터 증권시장 상장사들이 줄줄이 주주총회를 개최하며 '슈퍼 주총' 시즌이 시작됐다. 올해도 주주 배당과 정관 변경, 경영권 분쟁 등 쟁점을 둘러싸고 표 대결 향방이 집중 조명됐다. 일부 기업은 한 주가 지나며 표면에 드러난 갈등을 일단락지었다. 주총 공고가 올라온 지난달 말부터 가장 관심을 끈 기업은 고려아연과 한미약품, 유한양행, KT&G, 금호석유화학, 포스코홀딩스 등이다. 이들 가운데 한미약품과 KT&G를 제외하고 모두 주총을 마쳤다. 양상은 조금씩 달랐지만 갈등은 대부분 오너 일가와 사모펀드, 또는 집안 사이에 벌어진 경영권 다툼이었다. 자세한 내막을 살펴보면 유형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전문경영인 손 들어준 유한양행 주주들, 고려아연은 갈등 여지 남겨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곳은 유한양행이다. 지난 15일 서울 동작구 본사에서 열린 주총에서 최대 화제는 '회장직 부활'이었다. 앞서 28년간 회장 직함을 단 사람이 없었던 회사에서 현 경영진이 해당 직제를 재도입하려 하자 창업주 후손이 반대하고 나섰다. 유한양행은 고(故) 유일한 박사가 설립한 제약회사로 오래 전부터 소유와 경영이 분리됐다. 결과는 경영인 측의 승리였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주총 당시 "신약 개발 없이는 글로벌 제약사가 될 수 없고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려면 직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일한 박사의 하나뿐인 직계 후손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가 사유화를 우려하며 반대했지만 주주들은 전문 경영인 측 손을 들어줬다. 다음 타자는 고려아연이었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에서 진행된 고려아연 주총은 동업 관계인 장씨와 최씨 두 가문이 진검승부를 펼친 자리가 됐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우호 지분 포함 약 33.2%,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측이 32%를 확보해 팽팽한 상황이었다. 고려아연 경영은 최씨가 맡고 있다. 승부는 나지 않았다. 고려아연은 배당 증액 안건에서, 영풍은 정관 변경안에서 각각 이겼다. 고려아연은 미래 투자를 확장하기 위해 국내든 국외든 가리지 말고 지분 투자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영풍 측이 반대해 무산됐다. 이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22일 최윤범 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하며 갈등 여지를 남겼다. ◆싱겁게 끝난 포스코홀딩스·금호석화…'찻잔 속 미풍' 포스코홀딩스는 험난한 과정과 달리 결론은 싱거웠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 선임이 최대 관심사였다. 지난 21일 연이어 개최된 주총과 이사회는 일사천리로 진행돼 장 회장은 포스코그룹 회장실에 무혈입성했다. 장 회장을 후보로 선정한 최고경영자(CEO)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는 '호화 이사회' 논란 등 잡음에 시달리는 듯했으나 인선 작업을 완수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조카가 삼촌을 상대로 무려 4번이나 반기를 들어 눈길을 끌었다. 박철완 전 상무는 사모펀드인 차파트너스와 손잡고 박찬구 회장을 견제하는 주주제안을 냈다. 정관 변경과 자사주 전량 소각, 사외이사 선임안 등이 그것이다. '이번엔 다를 것'이라는 일각의 예상과 달리 박찬구 회장의 '완승'이었다. 금호석유화학은 22일 주총 직후 표결 결과를 공개했는데 출석 주식 수 기준으로 정관 변경안은 74.6%, 사외이사 선임안은 76.1%로 회사 측이 압승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박 전 상무의 반란을 '찻잔 속 미풍'이라며 일침을 놨다. 화제가 된 기업 중 표 대결이 남은 곳은 한미약품과 KT&G 정도다. 한미약품은 OCI 통합 문제로 가족 내 갈등을 겪고 있다. KT&G는 방경만 사장 후보 선임에 최대주주인 IBK기업은행(7.1% 보유)과 사모펀드가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두 회사 모두 28일 결과가 나온다.
2024-03-23 06:00:00
-
-
-
-
산업계 덮친 오픈AI '휴머노이드 쇼크'…200조 '로봇 전쟁' 돌입
미국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개발 업체 피규어AI와 인공지능(AI) 기업 오픈AI가 함께 선보인 '피규어01'에 전 세계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기계가 범접할 수 없다고 치부된 바둑에서 AI가 인간 기사를 이긴 지 10년도 채 안 돼서다. 피규어01 작동 영상 공개 후 "무섭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지만 산업계에서는 현실로 다가온 로봇 시대를 대비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인지·판단·추론 능력을 갖춘 로봇이 산업 현장에 투입되면 한계에 봉착한 생산성을 대폭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최대 200조원 규모로 급성장이 예상되는 로봇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도 막이 올랐다는 평가다. ◆공장은 이미 로봇 세상, 韓 자동화 세계적 수준 20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LG·두산 등 주요 대기업은 여러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로봇 또는 로봇에 쓰이는 부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호텔·식당 등 서비스뿐 아니라 물류와 제조, 의료까지 다양한 영역을 망라한다. 피규어01이 AI의 진화 수준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국내 기업은 로봇을 실제 사용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이미 반도체·가전 제조 시설에서는 다양한 형태를 가진 로봇이 활약하고 있다. 반도체만 해도 칩이 만들어지는 클린룸에서 사람이 하는 일은 설비 운용과 관리, 제품 검사, 패키징 등에 집중됐다. 가전은 일부 조립이나 품질 관리를 제외하고 공정의 많은 부분을 로봇이 대신한다. 삼성 반도체 공장 자동화율은 전(前)공정에선 90% 이상, 패키징을 비롯한 후공정에선 30% 수준으로 알려졌다. LG전자 핵심 생산 기지인 경남 창원 스마트파크는 자동화율 65%를 자랑한다. 특히 생산라인이 깔린 공장 건물 내부에서 자재와 제품을 운반하는 물류는 거의 100% 자동화됐다. 물류 로봇이 정해진 경로를 따라 움직이며 제품과 공정을 식별하고 알맞은 위치에 신속하게 옮겨놓는 식이다. 자동화된 공장에서는 그 흔한 지게차도 보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반도체 전·후공정 자동화 수준을 완전 무인화에 가깝게 높일 계획이다. LG전자도 미국 테네시 공장과 창원 스마트파크 자동화율을 70% 안팎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지능화 설비 구축이 진행 중이다. 자동차 업계에선 현대차·기아가 로봇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자동차 생산 공정은 프레스-차체-도장-의장(조립)-검수 순으로 진행되는데 현대차·기아는 차체 일부와 조립·검수를 제외한 대부분을 무인·자동화했다. 현대차·기아 공장의 자동화 정도는 다른 글로벌 완성차 기업 중에서도 앞서 있다. ◆"로봇 놓치면 다 잃는다"…기업들, 상용화 박차 국내 기업은 생산 과정에 로봇을 접목하는 단계를 넘어 로봇 자체를 제품화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글로벌 스타트업에 지분 투자를 하거나 자회사를 설립하고 다양한 시제품을 선보이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에서 생성형 AI를 탑재한 로봇 '볼리'를 공개하며 로봇 사업에 대한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가전과 스마트폰에 AI 기술을 적용한 삼성전자는 휴머노이드에 도전장을 낸 상태다. 지난해 로봇 벤처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을 확보한 데 이어 사람이 착용하는(웨어러블) 보조 로봇을 내놓을 계획이다. LG는 AI연구원과 LG전자, LG이노텍 등 계열사가 로봇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접객과 서빙 등을 하는 'LG 클로이'를 판매 중인 LG전자는 최근 미국 AI 서비스 로봇 스타트업 베어로보틱스 지분을 취득했다. LG이노텍은 인지 기능 구현에 필수적인 부품인 카메라 모듈을 고도화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모빌리티 역량과 2021년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밑바탕에 두고 사업을 전방위로 확장하고 있다. 스케이트 보드 형태 플랫폼, 모터 등 구동 부품을 바퀴 하나로 합친 '유니휠', 어느 방향이든 자유롭게 주행 가능한 'e-코너 시스템'을 한 데 모아 신개념 모빌리티를 준비 중이다. 이와 함께 작업·의료용 보조 로봇도 조만간 상용화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피규어01과 같은 휴머노이드도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기업 중 로봇 분야에서 다크호스로 평가받는 기업은 두산이다. 두산그룹은 계열사 두산로보틱스를 필두로 협동로봇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단체급식 시설, 공항, 제조 사업장은 물론 병원에 도입 가능한 협동로봇 제품군을 보유했다. 최근에는 복강경 수술 보조 로봇이 대구의 한 병원에서 담낭 절제 수술에 투입되기도 했다. 전문가 영입과 인재 확보도 활발하다. 삼성전자는 20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혜경 한성대 AI응용학과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현대차그룹은 상반기 수시 채용 공고를 내고 로보틱스 개발과 제조 지능화, 웨어러블 등 로봇 분야 직원을 모집하고 있다. LG 역시 소프트웨어, 차량용 전자 부품과 함께 AI·로봇 사업 채용을 진행 중이다. 기업이 로봇에 투자를 집중하는 이유는 성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스팅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400억 달러(약 54조원)로 추산된 세계 로봇 시장 규모는 오는 2030년 1600억 달러(214조원)로 전망됐다. AI와 센서, 반도체, 구동 모터, 통신 등 미래 산업 핵심 기술이 집약된 만큼 "하나를 놓치면 다 잃을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는 여전히 숙제다. 한 기업 관계자는 "국내 기업은 하드웨어 역량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소프트웨어에서는 구글이나 오픈AI 같은 미국 빅테크(거대 기술 기업)보다 약한 게 사실"이라며 "고급 인재를 확보할 수 있도록 보상 체계 마련이나 산학 협력 등 방법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2024-03-21 0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