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김동관(39·사진) 한화그룹 부회장의 행보가 매섭다. 자산총액 10대 그룹 '오너 3세'를 통틀어 유일하게 30대인 김 부회장은 경영 전면에 나서서 굵직한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방산은 역대 가장 잘 나가고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통한 조선·해양 산업 진출은 순항 중이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도 한화 마크를 단다.
7일 재계에 따르면 한화그룹 승계 구도는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사업별로 각 계열사 경영권을 나눠 갖는 분립 형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 그룹 총수 역할을 하며 비금융 사업을 챙기고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이 금융을, 삼남 김동선 한화솔루션 갤러리아부문 전략본부장이 유통·레저를 가져가는 쪽으로 윤곽이 잡혔다.
그룹 핵심인 ㈜한화와 한화솔루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모두 김동관 부회장이 대표이사다. 한화는 계열사마다 사업 분야에 따라 부문별로 나누고 각각 대표이사를 뒀다. 김 부회장은 지난 8월 단행된 인사에서 부회장 직급을 달며 3개 회사 전략부문을 이끌게 됐다.
◆韓 방산 '수출 랠리' 최대 수혜, 대우조선 인수도 '순항'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방산이다. 올해 한국의 방산 수출은 사상 처음으로 200억 달러(약 26조원) 돌파가 예상된다. 폴란드가 한국산 무기를 싹쓸이하며 '큰 손' 역할을 한 덕분이다. 폴란드는 K2 전차,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FA50 경공격기 등 방산 장비를 대량으로 사갔다. 인접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로 안보 불안이 고조된 탓이다.
국내 방산업계 1위 한화는 이른바 'K-방산' 바람의 가장 큰 수혜 기업이다. ㈜한화방산·한화디펜스·한화시스템 등 방산 자회사를 거느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 4분기 최고 실적을 점치는 분위기다.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이 600억원대에 그치며 기대에 못 미쳤으나 반전이 예상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 말 기준 해외 수출을 앞둔 방산 장비 수주 잔고는 6조4000억원에 육박한다. 지난 2월과 9월 각각 수주한 이집트와 폴란드 K9 자주포 공급 계약을 포함한 금액이다. 실적이 쌓여가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2026년 방산 수출 세계 5대 강국 도약"을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미군을 대상으로 차세대 무인 전투체계를 시연해 눈길을 끌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달 29일 마크 홀러 미8군 작전부사령관을 비롯한 미군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소형 다목적 무인차량 '아리온스멧'이 기동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아리온스멧은 원격 또는 자율로 움직이며 전투 물자와 부상자를 수송하고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다.
방산업계에서는 아리온스멧 시연을 미군 측에서 요청했다는 데 주목한다. 시연을 요청한 미 육군 전투력발전사령부(DEVCOM) 지상군 차량체계 연구소(GVSC)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무인 차량을 연구 중이기도 하다. 앞서 미 국방부는 아리온스멧을 해외 비교 성능 시험(FCT) 대상 장비로 선정했다. 국내에서 개발된 군용 무인 차량 중 최초다.
바다로 진출하기 위한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진행 중이다. 지난달 정밀 실사를 마무리한 한화는 본계약 체결을 앞뒀다.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지분 49.3%를 유상증자로 확보하고 경영권을 산업은행으로부터 넘겨 받는다.
인수 자금만 충분히 마련된다면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품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앞서 현대중공업그룹이 인수를 추진할 때와 달리 유럽연합(EU) 등 해외 경쟁당국 반대 가능성은 작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액화천연가스(LNC) 운반선을 비롯해 주력 선박에 대한 독점 우려가 적어서다. 노동조합 역시 고용만 보장된다면 반대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한화가 쏘아올릴 '누리호'…발사체 분야 선진국 추격
한화는 한국형 발사체 제작을 맡으며 사업 영역을 우주로 확장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1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으로부터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총괄 주관 제작 사업을 수주했다. 이에 따라 오는 2027년까지 누리호 3기를 제작해 총 4차례에 걸쳐 발사할 계획이다.
누리호 고도화 사업 중 하나로 진행되는 이번 사업을 통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우연이 보유한 발사체 관련 기술을 이전받는다.
발사체는 우주선과 인공위성 등을 지구 대기권 밖 우주로 실어 나르는 장치다. 한국은 1990년대 인공위성 국산화에는 성공했지만 미국과 러시아 등에 발사체를 의존해 왔다. 2013년 나로호와 올해 누리호 발사에 각각 성공하며 자력으로 인공위성을 쏘는 발판을 마련했다.
누리호 고도화가 이뤄지면 독자적인 우주 탐사가 가능해진다. 또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우주 발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 기업이 된다. 지난해에는 그룹 차원에서 우주 사업 협의체인 '스페이스허브'를 출범하며 한국의 '스페이스X'를 표방했다. 발사체 기술 확보로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고 본격적인 우주 탐사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다.
한화는 수년 내에 지상무기와 특수선(군함·잠수함), 우주항공을 아우르는 기업으로 도약하는 게 목표다. 여기에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선 태양광 사업을 더해 삼각편대(에너지·방산·우주)를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김 부회장이 구상하는 밑그림이기도 하다. 김 부회장은 스페이스허브 팀장을 맡으며 우주 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한화솔루션의 태양광 사업 흑자 전환도 그의 뚝심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라는 평가다. 김 부회장이 품은 '야심'은 한화그룹을 미국 록히드마틴 같은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