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한일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일본 완성차 업체가 뒤늦게 전동화에 나섰고 이미 성과를 내는 현대자동차그룹이 대규모 추가 투자를 예고해서다. 각국 규제로 전기차 보급 속도가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글로벌 3위인 현대차그룹이 1위 도요타를 제치고 향후 완성차 업계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전날(11일) 경기 화성시 기아 화성공장에서 국내 첫 전기차 전용 공장 기공식을 열고 "오는 2030년까지 국내 전기차 분야에 24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본 도요타와 혼다도 앞서 선언한 전동화 투자 계획을 이행하며 신차를 준비 중이다.
◆현대차그룹, 29년 만에 국내 신공장…라인업 늘려 미래 모빌리티 선도
현대차그룹이 국내에 신규 생산 시설을 짓는 것은 29년 만이다. 기아 화성 신공장은 국내 첫 전기차 전용 공장이자 세계 최초로 목적 기반 차량(PBV)을 생산하는 곳이다. 현대차그룹은 화물 배송용 밴, 이동형 사무실 등 목적에 따라 다양한 차량을 제작할 예정이다. 전기로 구동되는 PBV는 도심항공교통(UAM)과 함께 현대차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라인업 중 하나로 꼽힌다.
새 전기차 공장은 기아 화성공장 내 3만평 부지에 1조원을 투입해 오는 2025년 하반기(7~12월)까지 양산을 목표로 한다. 현대차그룹은 연간 최대 15만대 규모 전기차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새 공장과 함께 2030년까지는 글로벌 전기차 생산량을 연간 364만대까지 늘려 세계 3대 전기차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도 내세웠다. 목표 생산량 중 절반에 가까운 151만대는 국내에서 만들기로 했다. 화성 공장과 함께 올해 안에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도 새 시설을 짓고, 내연기관 생산 라인은 전기차 생산 설비로 바꿀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시설 확충과 함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다양화하고 핵심 부품인 배터리, 모터 등 시스템을 고도화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챙기면서 상품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내 전기차 보급 확산을 위해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고 5조2000억원 규모 부품 업계 상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동화 늦은 日 도요타·혼다, 90조원 쏟아붓고 현대차그룹 견제
현대차그룹은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를 내놓은 이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세단에 전동화 모델을 보강하고 있다. 반면 도요타와 혼다 등 일본 완성차 업체는 그동안 전기차 전환에 미온적이었지만 올해 들어 속속 전동화 목표를 구체적으로 밝히며 글로벌 경쟁에 참전 의사를 밝혔다.
도요타는 현대차 아이오닉5가 나온지 반년 이상 지난 2021년 12월 들어서야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내놨다. 오는 2030년까지 총 4조엔(약 41조원)을 투자에 전기차 30종을 출시한다. 자체 소프트웨어와 전용 배터리도 개발 중이다.
최근 취임한 사토 고지 도요타 사장은 지난 7일 일본 도쿄 사업 설명회에서 "2026년까지 전기 신차 10종을 출시하고 전 세계에서 연간 150만대 전기차를 판매하겠다"고 말했다. 도요타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1048만3000대를 판매해 1위 브랜드를 차지했지만, 전기차 분야에서는 28위에 불과해 존재감이 약하다.
혼다도 약 400억 달러(52조원)를 들여 전용 플랫폼을 개발하고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매출을 끌어올린다. 혼다는 이달 중 새 전기차 모델 개발과 배터리 생산, 충전 네트워크 확충 등을 지휘할 독립 사업부를 아시아에 설립한다. 혼다가 추진하는 사업에는 테슬라 슈퍼차저와 비슷한 직영 충전소 계획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베 토시히로 혼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한 외신 인터뷰에서 "내연기관차가 2040년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지만 앞으로 탄소 중립으로 전환하면서 배터리 전기차와 연료전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양국 업체가 전동화에 수십조원 규모 투자에 나서는 것은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리포트링커의 지난달 전기차 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시장 규모는 지난해 5438억 달러(706조원)에서 오는 2030년이면 2조7000억 달러(3508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나 미국 환경보호청(EPA)도 내연기관차에 대한 추가 규제를 예고하며 전기차 보급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독일 폭스바겐 그룹이나 메르세데스-벤츠, BMW와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도 전동화 라인업 확장과 자체 생산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