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경제 이론에 따르면 시장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점에서 결정된다. 어떤 절대적 존재가 정해주지 않고 무수히 많은 소비자와 생산자가 물건을 경매에 부치듯 암묵적으로 소통한다고 가정한다. 이들의 마음 속에는 '이 정도 가격이면 물건을 사겠다(또는 팔겠다)'는 의사가 들어 있다. 이것이 모이고 모여 시장을 이룬다.
정부가 세금을 걷는 순간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진다. 소비자가 느끼는 가격은 세금의 절반만큼 비싸지고 생산자가 보는 가격은 나머지 절반만큼 싸진다. 따라서 소비자는 물건을 덜 사려 하고 생산자는 물건을 덜 팔려 한다. 조세 수입의 크기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포기하는 이득과 같다.
정부는 종종 세금을 통해 고의로 시장을 왜곡시켜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 의도적으로 거래량을 줄여야 할 때 세금을 더 매겨 가격을 높이고 반대로 소비가 위축된 때에는 세금을 깎아 거래량을 늘린다. 여기에 착안한 세금 중 대표적인 예가 유류세와 담뱃세다. 과거에는 수입품 사용을 억제하고 사치를 막으려고 특별소비세를 걷기도 했다.
최근에는 유류세 인하 조치가 연장될지 여부가 화두였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기름값 부담을 완화하고 물가를 안정시킬 목적으로 유류세율을 37%(올해 1월부터 휘발유는 25%) 낮췄는데 이를 오는 8월까지 4개월 더 이어가기로 했다. 세금을 가격 통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지난해 유류세를 인하했을 때 목적과 지난 18일 이를 연장하기로 결정한 목적이 어째 달라 보인다. 물가를 잡지 못하는 정부는 늘 인기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물가보단 인기에 방점이 찍힌 분위기다. 벌써부터 "내년 총선을 의식한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온갖 매체와 비정부기구(NGO)가 귀가 따갑도록 기후변화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기업이 탄소중립 속도전을 벌이는 와중에 유류세를 왜 계속 낮춰 주느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면 그만큼 석유를 덜 써야 하는데 정부가 베푸는 선의는 미심쩍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부는 국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입장이다. 국제유가가 오름세를 탄 지금 상황이 시장의 원리를 이용해 탄소 배출량을 줄일 기회인 건 맞다.
기후변화와 조세 수입, 그리고 소위 '서민 부담 완화'라는 딜레마에 대해 정부가 진지하게 고민했을지 의문이다. 인기는 달콤하지만 유류 소비 증대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 수조원에 이르는 세수 결손은 값비싼 대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