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싱을 위한 자동차 '페라리'
페라리 창업주 엔초 페라리는 10살 무렵 가족과 함께 찾은 이탈리아 볼로냐 에밀리아 서킷에서 처음 자동차 레이싱 경기를 처음 접하고 그 매력에 빠져 들었다. 이후 13살 무렵 운전을 처음 배운 그는 마침 아버지가 자동차 정비소를 차려 차와 자동차 레이싱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엔초 페라리는 당시 세계 자동차 레이싱을 손에 쥐고 있던 피아트(Fiat)에 지원했지만 떨어지고 트럭 회사에 운전사로 취직하게 된다. 그리고 1919년 그는 자동차 레이싱을 제패하던 피아트 팀의 페리체 나자로를 만난 엔초는 그의 소개로 스포츠카 제작사인 CMN(Costruzioni Meccaniche Nazionali)에 테스트 드라이버로 취직한다. 같은 해 CMN의 경주팀장이던 시보치에게서 운전 기술을 인정받은 엔초는 파르마-베르체토(Parma-Berceto) 경주에 출전해 11위를 차지하면서 카레이서로 데뷔한다. 이어 가장 혹독한 경주이자 중앙 진출 무대인 타르가 플로리오(Targa Florio) 경주에 출전해 9위에 입상하면서 명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1929년 자신의 이름을 딴 경주팀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만들고 팀과 함께 각종 유럽 그랑프리를 석권하며 최고의 선수로 성장한다. 1932년 아들 디노가 태어나면서 아내와의 약속대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팀 관리와 경주차 개발에만 매달리게 된다.
1938년 엔초 페라리는 안정적인 팀 운영을 위해 이듬해인 1939년 일반도로용 스포츠카를 생산하는 오토 아비오 코스트루지오니를 설립한다. 곧 경주용 스포츠카 개발에도 착수해 815로 잘 알려진 8기통 1500㏄ 스파이더를 개발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모든 자동차 경주가 중단되고 1943년 연합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작업장을 모데나에서 마라넬로로 이전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디자인과 자동차 생산이 재개돼 1947년 역사상 첫 페라리 12기통 1500㏄ 125 스포츠가 탄생했다.
1948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첫 도로용 스포츠카 166인터를 생산했으며 1963년에는 레이싱 훈련 학교를 설립했다. 1972년에는 페라리의 모든 성능을 테스트하는 피오라노 트랙을 만드는 등 자동차를 향한 그의 열정은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계속됐다. 특히 스쿠데리아 페라리팀은 1988년까지 무려 5000번의 우승 타이틀을 획득하는 강팀으로 도약한다.
이렇듯 수많은 레이스를 통해 얻어진 뛰어난 기술과 최고의 차를 만들어 내겠다는 집념이 도로 주행용차에도 온전히 담겨 있으며 페라리는 그 어떤 차량도 따라올 수 없는 혁신적인 모델을 끊임없이 선보이고 있다.
특히 페라리는 전기차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고집을 꺾고 오는 2025년 자사 최초의 순수 전기차를 출시할 예정이다. 그리고 2026년 전체 생산량 대비 하이브리드·전기차 비중을 60%, 2030년 8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마라넬로 생산공장을 증축하면서 세 번째 하이브리드·전기차 생산 전용 라인을 만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