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피보험자 사망을 인지하지 못하고 장기요양 판정을 했어도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는 없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보험계약 약관에 따라 피보험자 사망으로 보험 계약이 소멸했다는 근거에서다.
1일 보험권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DB손해보험이 피보험자 A씨의 유족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지난달 12일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울산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
A씨는 2014년 3월 DB손보의 장기간병요양 진단비 보험에 가입했다. 해당 약관에는 보험기간 중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대상으로 인정됐을 시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한다고 규정됐다. 이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등급판정위원회로부터 1~3등급의 장기요양 판정을 받은 경우'가 해당된다.
또 피험자가 보험기간 중 사망하면 보험계약은 소멸한다는 내용도 명시됐다.
암 투병 중이던 A씨는 2017년 6월 1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신청했다. 일주일 뒤인 8일 공단이 병원을 방문해 실사를 진행했는데 당일 밤 A씨가 사망했다. 공단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같은 달 21일 A씨를 장기요양 1등급으로 판정한 것이다.
이후 보험금 지급 여부를 놓고 보험사와 유족간의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 DB손보는 A씨가 장기요양등급 판정 이전에 사망했으므로 계약이 소멸해 보험금을 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7년 10월 유족을 상대로 채무부존재 소송을 냈다. 이에 유족도 이듬해 6월 DB손보를 상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맞소송을 제기했다.
1·2심에서는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요양등급 결정은 피보험자의 건강 상태를 보고 장기요양을 필요로 할 정도임이 확인되면 족한 것이지 등급판정일이 사망 이후라고 해서 달리 볼 수 없다"며 "설령 최종 판단 시점에 사망했어도 장기요양을 필요로 하는 상태였다는 사실 자체가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또 등급판정위원회 결정일을 기준으로 본다면 시점에 따라 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지가 달라져 불합리하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하급심 판단을 수긍하기 어렵다며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상 장기요양급여는 피보험자의 생존을 전제로 하므로 장기요양인정 신청인의 사망 후에는 장기요양등급을 판정할 수 없다"며 "등급판정위원회가 사망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했더라도 이는 사망자에 대한 장기요양등급 판정이어서 법률상 효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피보험자가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대상에 해당할 정도의 심신 상태임이 확인됐어도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보험계약이 소멸했다면 보험약관이 정하는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