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는 1810년 프랑스 철강 기업 '푸조 형제 회사'에서 비롯됐다. 당시 장 피에르 푸조의 두 아들은 낡은 정곡 공장을 주조 공장으로 개조하고 본격적인 철제 제품(물레방아, 커피분쇄기, 재봉틀, 바늘, 가위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 피에르 푸조의 손자인 아르망 푸조는 영국 유학 중 자전거와 자동차에 관심을 보였다. 아르망은 1889년 푸조의 첫번째 자동차 '세르폴레', 증기엔진을 장착한 4인승 3륜차를 만들었다. 1890년에는 프랑스 파리세계박람회에 출품해 눈길을 끌었다.
푸조는 1897년 프랑스 동부 도시 소쇼에서 본격적으로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다. 설립 초기인 1903년까지 배기량 5550cc 대형 엔진을 얹은 차로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와 함께 785cc 작은 엔진을 얹은 일반 상용차 '베베'를 선보여 시판 첫해에 1200대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자동차 사업 시작부터 함께한 사자 엠블럼은 과거 아버지 에밀 푸조가 1858년 당시 지역 내 금세공사이자 조각가인 줄리앙 블레이저에 의뢰해 만든 것이다. 강인함과 유연성,속도를 상징한다.
푸조는 이후 미국 포드가 대량 생산의 물꼬를 트며 자동차 대중화를 본격 돌입하자, 이를 열정적으로 벤치 마킹해 프랑스 자동차 산업 대중화를 이끌며 두각을 나타냈다.
푸조의 브랜드 철학은 스타일(Style), 다이나미즘(Dynamism), 신뢰(Reliability)로 요약된다. 세계 랠리 챔피언십에서 수 년 연속 우승한 실력의 주행 성능, 그리고 오랜 역사에 걸쳐 유럽 등지에서 인정받은 기술력 등을 통해 입증해내고 있다.
이후 유럽 내 전성기를 맞이했던 적이 있고 1,2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 개발도상국들을 대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기도 했다. 차량 판매보다 라이선스로 더 큰 수익을 봤다는 평가도 나온다.
푸조의 영향력은 1879년 우리나라까지도 전파된 적 있다. 당시 아시아자동차가 푸조의 후륜구동 대형 세단인 604 모델의 라이선스를 들여와 생산한 것이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의 자동차산업합리화 조치로 인해 국내에서 퇴출 당했다.
이같은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푸조가 글로벌 완성차 시장 전동화 전환에도 기여할 예정이다. 스텔란티스에 따르면 최근 스텔란티스는 국내 판매사에 오는 2024년부터 새로운 디젤차를 수입하지 않겠다고 전달했다. 현재 푸조가 국내에서 판매 중인 디젤차는 준중형 해치백 308, 중형 세단 508,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3008, 중형 SUV 5008 등으로 이들 차종의 재고가 소진된 후엔 디젤차로 그 자리를 다시 채우지 않겠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푸조의 이같은 조치에 대해 한국 시장의 반응을 살피고 글로벌 전략에 적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앞서 린다 잭슨 푸조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월 "한국은 글로벌 전자제품, 자동차 업계를 선도하는 국가로 최대한 빠르게 신차를 출시해 피드백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