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재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외연 확장을 추진 중이다. 최근 인수합병(M&A)과 공장 신·증설에 썼거나 투자하겠다고 밝힌 금액만 10조원에 육박한다. 총 3조4000억원을 들여 미국에 구축하는 태양광 통합 생산단지 '솔라허브'와 더불어 인수 금액이 2조원 규모 '빅딜'인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가 대표적이다.
◆'마지막 퍼즐' 조선업 진출 이룬 한화
한화오션 출범으로 조선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한화그룹은 생태계 전반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HSD엔진을 인수하며 선박 엔진을 내재화하는 한편 친환경 특화 해운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탄소중립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친환경 선박 핵심인 엔진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자체적으로 테스트할 토대를 마련하는 그림이다.
모든 과정은 속전속결로 진행 중이다. 지난해 5월 당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마무리한 직후부터 오는 27일로 예정된 HSD엔진 지분(32.77%) 확보까지 10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상반기 중 해운업 진출까지 성사되면 1년여 만에 조선업 밸류체인(가치사슬)을 완성하게 된다.
방위산업에 주력한 한화그룹에게 조선업 진출은 숙원이었다. K9 자주포와 지대공 유도무기 체계 '천마', 각종 포탄 등 지상 방산에서 기반을 다진 한화그룹은 항공기 엔진과 우주 발사체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이른바 '방산제국'을 이루기 위해 군함정이라는 퍼즐 조각만 남겨두고 있었다.
재수 끝에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자 "승부사 기질이 돋보였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화그룹은 2008년 첫 도전 당시 6조3000억원을 써냈는데 15년 만에 가격을 3분의1 수준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 기간 대우조선해양 기업 가치가 하락한 탓이긴 하지만 한화로서는 인수 자금을 크게 아낄 수 있었다.
한화그룹은 한화오션 정상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적극적인 자본 확충을 통해 부채 비율을 낮췄다. 한화오션 부채비율은 지난해 1분기 말 1858%나 됐지만 인수 이후인 3분기 말에는 396%까지 떨어졌다. 연말 기준으로는 200%대까지 개선된 것으로 전망됐다. 향후 매출과 수익성을 가늠할 수 있는 수주 실적 역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로 3년치 일감을 확보하며 양호한 상태다.
◆차기 캐시카우는 태양광, 김동관 '승부수'
투자의 또 다른 축은 태양광이다. 이 사업은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움직임이 활발해지며 뜨는 분야로 주목을 받았으나 국내에서는 입지나 정치적인 문제 등과 결부돼 많은 기업이 진출을 꺼리거나 발을 뺐다. 한화그룹은 2012년 독일 큐셀을 사들여 10년 가까이 손실을 감수하며 투자를 감행했다.
태양광 사업을 하는 한화솔루션 큐셀부문(한화큐셀)은 세계 최대 시장인 북미로 눈을 돌렸다. 이 지역은 토지 면적이 넓고 일사량이 풍부해 태양광 발전의 최적 입지로 꼽힌다. 저가 공세로 물량전을 펼치는 중국 제품과 비교해 발전 효율이 높다는 점도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화큐셀이 미국에 조성 중인 솔라허브는 현지에서 유일하게 소재와 부품, 모듈, 완성품을 통합 생산할 수 있다.
때마침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상 보조금 수혜 대상에 태양광이 포함돼 "잭팟이 터졌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올해 새롭게 추가되는 발전 용량(62.8기가와트·GW)의 절반 이상을 태양광이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글로벌 최저한세라는 변수가 있지만 IRA에 따른 예상 세액공제 금액은 오는 2025년 1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여러 신사업을 주도하는 인물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다. 김 부회장은 2022년 9월 부회장을 승진한 뒤 부친을 대신해 조직을 빠르게 장악했다. 이와 함께 진행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김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재계에서는 김 부회장의 다음 투자처에 주목하고 있다. 한화 측은 강하게 부인하지만 해운사인 HMM 인수 후보로 계속해서 거론되는 것도 '투자 DNA'와 무관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