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텍사스 경질유(WTI)는 12일(현지시간) 배럴(159ℓ) 당 80.06달러로 전일 대비 3.22달러(4.19%) 올랐다. 이란과 레바논 무장 세력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대해 전면 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높아진 탓이 컸다. 두 세력은 지난달 3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발생한 이스마일 하니예 하마스 정치지도자 암살 사건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하고 보복을 시사했다.
그러나 중동 내 긴장감이 높아지는 와중에도 국제 유가 추이는 하락세를 탔다. WTI의 월 평균 가격은 지난 4월 배럴 당 평균 84.39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이달 들어 배럴 당 평균 75.54달러까지 하락했다. 긴장 강도보다 상승 폭이 다소 낮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국제 유가 상승세가 막힌 배경엔 세계적 경기 침체 공포감이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동반 침체에 들어설 징후를 보이면서 시장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미국의 지난달 실업률은 지난 6월보다 0.2%p 오른 4.3%를 기록했다. 2년 9개월 만에 최고치다. 오는 15일 발표를 앞둔 중국의 지난달 실업률도 전월 대비 0.1%p 오른 5.1%가 될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원자재 흐름을 보면 침체 신호는 더 뚜렷해진다. 경기 선행 지표로 여겨지며 '닥터 코퍼(구리 박사)'라고도 불리는 구리는 지난 5월 t당 1만930달러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하락세를 타며 지난 12일 8975달러까지 내려왔다. 고점 대비 17.9% 떨어진 셈이다.
중국 원유 수입량도 연중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중국 관세청에 해당하는 해관총서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지난달 원유 수입량이 전월 대비 8.9% 감소했고, 일일 원유 수입량은 997만 배럴을 기록했다고 알렸다.
중국 내 일일 원유 수입량이 1000만 배럴 미만으로 내려간 건 2022년 9월 이후 처음이다. 2022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여러 도시가 봉쇄됐던 당시 수준으로 원유 사용량이 낮아졌다는 의미다.
만약 경기 침체가 현실화할 경우 국내에선 정유·석유화학(석화) 등 장치 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장치 산업은 정제 시설 등 대형 설비가 필요한 사업을 말한다. 설비가 큰 만큼 대량 생산에 유리하지만, 반대로 수요가 부족해 가동률이 낮아지면 대규모 손실을 본다는 특성이 있다.
경기 침체 우려에 석화 업계 관계자는 "세계 시장에서 품질로 경쟁력 할 수 있는 첨단 제품을 개발하고, 경영 효율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밖에 없다"며 "상황에 따라 정부의 지원책도 필요할 걸로 보인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