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MBK파트너스가 설립한 투자 목적 기업 한국기업투자홀딩스는 고려아연 주식을 주당 66만원에 공개매수하겠다고 기습 발표했다. 이에 고려아연은 같은 날 MBK의 공개매수를 적대·약탈적 인수합병(M&A) 시도로 규정하고, 18일엔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겸 고려아연 사내이사를 배임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예고했다.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는 영풍그룹 장씨 일가와 고려아연 최씨 일가 사이에 벌어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 비롯됐다. 분쟁 이전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25.4%를 가진 영풍그룹이었다. 장씨 일가와 코리아써키트 등 영풍 계열사 지분 7.7%를 합해 고려아연 지분율 33.1%로 지배주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고려아연의 경영은 1974년 창립 이후부터 지배구조와 상관없이 공동 창업주 집안인 최씨 일가가 도맡아 왔다.
영풍 쪽 장씨 일가가 위기감을 느낀 건 지난해 고려아연 최씨 일가 쪽에서 현대자동차, LG화학 등 우호지분을 확보하면서 부터다. 15.6%에 불과하던 고려아연은 지분율을 늘려 영풍 쪽과의 격차를 1%까지 좁혔다.
이에 영풍 측 장씨 일가가 MBK파트너스를 포섭해 고려아연 지배권 강화에 들어갔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영풍이 MBK와 손을 잡으면서 싸움은 복잡해졌다. 일단 울산광역시가 고려아연의 지원사격에 나섰다. 울산시는 고려아연 주력 사업장인 온산공장이 있는 곳이다. 향토기업을 사모펀드 자본에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게 울산시가 나선 이유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지난 18일 울산 남구 울산시청에서 "중국계 자본이 대거 유입된 MBK가 적대적 M&A를 할 경우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고려아연 주식 사주기 운동 참여로 120만 울산 시민의 힘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소액주주 참여를 독려했다.
하루 앞서 울산시의회도 MBK의 고려아연 M&A 시도에 반대했다. 김종섭 울산시의회 의장 직무대리를 비롯한 의원 22명은 17일 입장문을 통해 "적대적 M&A로 (고려아연이) 중국 자본에 넘어가게 되면 울산 고용시장과 시장 질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고려아연 노조도 '공개매수 철회 촉구 집회'를 통해 고려아연을 거들었다.
고려아연 노조원 70여명(노조 측 주장)은 19일 MBK파트너스 본사가 있는 서울 종로구 D타워 앞에서 집회를 열고, "기업사냥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회사를 빼앗길 위기에 직면해 있다. MBK파트너스의 약탈적 공개매수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주장했다.
MBK파트너스는 곳곳에서 불거지는 반대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이날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울산시와 울산시의회 반대에 대해 "소통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울산에선 가장 중요한 고려아연이 중국 자본에 넘어간다고 하니까 걱정할 만 하다"며 "그런 오해를 찾아뵙고 설명하고 해소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고려아연 노조의 반대 움직임에 대해선 "지금 협의할 창구가 존재하지 않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고용에는 어떠한 변화가 없고 고용 창출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영풍과 고려아연 양측의 지분율 승부는 다음달 4일 MBK파트너스의 주식 공개매수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결정될 걸로 보인다. 그 사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해외에서 기업인들을 만나 우호 지분을 추가 확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양측과 각 우호세력이 가진 지분을 비롯해 국민연금 지분과 자사주를 제외하면 주식 잔여 물량은 22.92%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