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믹데일리]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산실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수백억 원대의 연구비 카드 부정 사용 실태가 무더기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법인카드로 110억원을 결제해 ‘상품권깡’을 하거나 유흥주점에서 사용하고 회의록을 조작하는 등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연구비가 일부 연구원들의 ‘개인 지갑’처럼 쓰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국가 R&D 기관의 관리·감독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붕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1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최민희 위원장이 4대 과기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KAIST는 내부 직원이 2022년 4월부터 올해 8월까지 법인카드 19개를 이용해 ‘카드 돌려막기’와 ‘상품권깡’ 방식으로 약 6500건, 총 110억원을 결제한 사실을 적발하고 특별감사를 진행 중이다. KAIST는 이 직원의 미납 카드대금 9억원을 우선 대납한 뒤 구상권 청구 등 법적 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다.
GIST의 상황도 심각하다. 지난해 7월 특별감사를 통해 연구비 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연구원 4명과 유흥성 비용을 지출한 1명을 적발했다. 이들은 회의록을 허위로 작성하는 수법으로 연구비를 빼돌렸다. 휴가 중인 직원을 회의 참석자로 올리거나 같은 시간 다른 회의에 참석한 인물을 중복 기재하는 등 상습적인 조작이 이뤄졌으며 부하 직원에게 허위 회의록 작성을 지시한 사례까지 드러났다. 유흥주점, 와인바 등에서 사용한 금액도 150만원이 넘었다.
과기원의 연구비 부정 사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21년에도 KAIST와 DGIST에서 예산의 사적 사용이 적발되는 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정 결제가 2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과기원은 물론 상급 기관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관리·감독 시스템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최민희 의원은 "과기원에서 법인카드와 연구비 카드가 개인 지갑처럼 쓰이고 있는 건 충격적"이라며 "이는 일부 연구원의 일탈이 아니라 과기원은 물론 과기부의 관리·감독 부실에 따른 구조적 문제"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최 의원은 이어 “부정 사용이 반복되고 있는 GIST에서는 총장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며 기관장 책임론을 제기하고 “법인 카드 사용 매뉴얼을 전면 재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