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대표 정유 4사(SK에너지, S-OIL,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는 참혹한 한해를 보냈다. 코로나19 여파로 경기 부진 우려가 커지면서 급락한 유가가 정제마진을 크게 낮췄기 때문이다. 정유사 특성상 정제마진에 수익성이 연동되고 대규모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시장 상황이 나아지는 것 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긴 어려웠다.
2020년 3분기 누적기준 정유 4사 영업손실 합산 규모는 4조3000억원에 달한다. 작년 4분기 유가 상승을 감안해도 적자폭을 줄이기 힘든 수준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유가 상승폭이 커지고 있어 정유 4사 실적 개선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 정제마진 손익분기점은 3~5달러 수준이다. 최근 정제마진은 지난해 3월 코로나19 사태 발발(배럴당 3.7달러) 이후 가장 높은 2.8달러를 기록했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유가가 상승하는 만큼 정제마진 폭이 확대된다는 점에서 향후 추가 상승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다만 정유 4사 실적 개선은 다소 차별화되는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누적 영업손실률을 보면 현대오일뱅크가 가장 낮은 –5.0%로 나타난 반면, SK에너지는 무려 –11.1%를 기록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지난해 1분기는 정유사별 외형에 따라 손실 폭도 컸다. 그러나 2분기 이후 예상과 달리 일부 정유사들이 흑자전환을 하는 등 극명히 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 배경에는 설비 고도화가 있다. 실제로 현대오일뱅크는 정유 4사 중 설비 고도화 비율이 40% 이상으로 가장 높다. 설비 고도화를 통해 값싼 원유를 조달하더라도 최종 생산물의 품질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인프라 사업 특성상 외부 충격에 취약한 부분을 기술력으로 극복한 셈이다.
반면, 설비 고도화율이 가장 낮은 SK에너지(24%)는 업계 맏형으로써 체면을 구겼다. SK에너지와 외형 규모가 비슷한 GS칼텍스가 현대오일뱅크와 유사한 수준인 5.1% 영업손실률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GS칼텍스는 설비 고도화 비율이 34%로 현대오일뱅크, S-OIL보다 낮지만 석유화학부문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실적을 효과적으로 방어해냈다.
S-OIL은 설비 고도화 비율이 39%에 달하는데도 불구하고 지난해 영업손실률은 9.4%를 기록했다. 이는 3분기 정기보수 및 태풍으로 인한 설비폐쇄 등으로 정유부문이 여타 경쟁사 대비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탓이다.
한편 현대오일뱅크는 기업공개(IPO)를 추진중이다. 2020년은 악몽의 한 해였지만 설비 고도화 능력을 톡톡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올해 첫 ESG채권 발행에서도 2000억원 모집에 무려 1조3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몰리는 등 흥행에 성공하면서 정유업계 막내의 반란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