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예계약", "돈줄 쥔 갑(甲)의 횡포"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 보험사 사슬에 묶인 영세 자동차 정비업계가 울부짖고 있다. '협력사' 가면을 쓴 손해보험사들은 우월적 지위로 동네 정비사를 옥죈다. 수리비용 단가 후려치기와 미납·지급 지연은 차고 넘친다. 불만 표시로 낙인 찍힌 업체는 소송에 휘말리기 일쑤다. 업계 갈등을 풀어야 할 정부와 관계 당국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본지는 업태 질서를 황폐화시키는 손보사 갑질 민낯을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손보사 횡포에 정비업계 "살려달라"...공임비 '후려치기'
② 홍원학·김정남 "협력업체와 상생" 헛발질…손보사 수리비 미납 '고질병'
③ 손보사 횡포 부른 불명확 '공임'…3년만에 산출 공식 찾는 '뒷북 행정'
④ 국회, 빅4 손보사 갑질에 '속수무책'…10월 국감서 칼 빼든다
<계속>
국회는 손해보험사의 공임(工賃) 후려치기·미지급 갑질 실태를 10월 국정감사대에 올려 낱낱이 파헤칠 뜻을 분명히 밝혔다. 정조준 대상은 삼성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KB손해보험 등 4대 손보사로 전해졌다.
그간 열린 국감에서 손보사 횡포 사례를 수차례 언급했지만 일회성 군기 잡기식에 그쳐 전시성 감사라는 지적이 잇따른 데에 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갈수록 교묘하게 정비요금을 깎거나 늦게 지급하는 4대 손보사의 민낯이 이번 국감에서 드러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빈 수레 요란한 국감…손보사 횡포 '외면' 논란
손보사와 정비업계 간 갈등은 20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으나 국회는 최근 들어서야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국회의 외면 속에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금융당국도 방관자 자세로 일관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28일 본지가 최근 10년간 국회 정무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 국감 보고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손보사 갑질 문제는 2014년, 2018년, 2021년 단 세 차례 등장에 그쳤다. 그마저 2014년에는 보험사가 민원을 수용하지 않는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정비업체를 상대로 한 손보사 갑질은 조명받지 못했다.
국감에서 본격적으로 관련 사안이 다뤄진 시기는 정부가 적정 정비요금을 최초 공표한 2005년 이후 10년을 훌쩍 넘기고부터다.
추혜선 전 정의당 의원은 2018년 10월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자동차보험 정비 수가(酬價)를 둘러싼 손보사와 정비업체 간 분쟁을 다뤘다. 당시 증인으로 국감장에 출석한 삼성화재 임원이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公言)했으나 현재까지 공언(空言)에 그쳤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국토부가 2018년 발표한 연평균 적정 정비요금 인상률(1.5%)이 너무 낮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토교통위 국감에서 정비요금 인상률이 결정된 근거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자동차보험 정비 수가를 결정하는 보험정비협의회에서 회의록조차 제대로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렇듯 과거 국감장에서 형식적 질타만 반복하는 사이 손보사와 정비업체 간 '갑을(甲乙)' 관계는 더욱 굳어진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손보사들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실태 파악에 나서자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중기부는 2019년 3월 4대 손보사를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벌이려 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이들 손보사는 현장 조사를 나온 중기부 직원들을 돌려보내거나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중기부는 당시 손보사가 정비업체에 지급할 수리비를 부당하게 삭감하거나 미지급한 사례를 들여다보려 했다.
손보사는 중기부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손보사와 정비업체는 자동차 보험 수리 업무를 위·수탁한 관계가 아닌 협력 관계라는 주장을 폈다. 손보사와 중기부 간 기싸움은 7개월 만인 2019년 10월 4대 손보사와 정비업계, 정부, 시민단체 등이 '상생 협약'을 체결하면서 일단락됐다.
사정이 이렇지만 현장에서는 손보사 갑질을 막을 제동장치가 없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정비업체 대표들은 "이제는 마땅히 호소할 곳도 없다"며 일할 의지가 꺾인 상태다. 한 업체 대표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도 해보고 정부 과천청사에서 시위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고 토로했다.
◆"상세히 대책 마련" 달라진 기류…금감원 조사 제언
지금까지 '깡통 감사'라는 맹비난이 이어지자 다음 달 열릴 국감을 앞두고 여의도에서는 손보사와 정비업체 간 갈등을 유심히 살피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여야가 이번 국감에서 해당 사안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동시에 공론장을 마련할 것을 한목소리로 내면서다. 해묵은 과제를 풀기 위해 다시 한번 칼을 꺼내 들 국회가 체감도 높은 개선을 이끌지 주목된다.
국회 정무위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언론 보도로 빅4 손보사의 수리비 미지급 갑질 실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며 "영세 정비업체(공업사)가 수리비 미지급으로 생계에 타격을 입는 것은 대형 보험사로서 책임 있는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특히 윤 의원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금융감독원이 현장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당국도 공임 문제와 수리비 지급 지연 등 주요 쟁점에 대해 손보사와 정비업체 양측 주장을 균형 있게 청취하는 작업부터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곧 다가올 국감에서 영세 공업사가 겪는 어려움을 확인하고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야당도 손보사와 정비업체 간 갈등을 두고만 보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동차보험은 의무 보험으로 국민 모두와 관련된 민생 이슈"라며 "국회에서 관련 민원과 현장 목소리를 듣고 이번 국감에서 상세히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어 "대형 보험사에 비해 영세 공업사는 현실적으로 을(乙) 위치에 있다"며 "영세 공업사 경영난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오랜 악순환을 끊기 위해 보험사와 공업사 간 실질적인 소통의 장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