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 업황 부진은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업계 2위 롯데케미칼은 지난해까지 누적 적자 약 1조원을 기록했다. 업계 1위 LG화학과 3위 한화솔루션은 석화 부문에서 등락을 반복하다 지난 1분기까지 두 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업계 1~3위 업체가 나란히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최근엔 사업장 매각설·통합설까지 돌았다. LG화학 NCC 공장 물적 분할, 롯데케미칼 말레이시아 LC 타이탄 매각, 여수·대산 공장 통폐합 등이 거론됐으나 정작 관련 업체들은 확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외부에서조차 구조조정 필요성이 있다고 진단한 모양새다.
만약 실제로 구조조정이 이뤄진다면 일종의 제로섬 게임의 양상을 띨 가능성이 높다. 제로섬 게임은 승자와 패자의 이익·손실 합이 0이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특정 업체가 먼저 구조조정을 해 설비 폐쇄·철수를 진행할 경우 남아있는 업체들이 해당 시장 점유율을 가져가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철수하면 손해, 남아있으면 이익을 얻게 되는 구조다.
이런 식의 부진과 연이은 구조조정은 앞서 1980~2000년대 일본에서 이뤄졌다. 해당 과정에 대해선 지난 2013년 산업연구원에서 발간한 '일본 석유화학산업의 구조조정 과정과 해외 진출 동향 및 시사점'에서 흐름을 짚어볼 수 있다.
일본 석화업계는 한때 세계 4위의 에틸렌 생산 능력을 보유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과 한국, 대만 등 신흥국의 추격으로 산업 경쟁력이 크게 악화했다. 중국, 중동발(發) 과잉 공급으로 위기를 겪는 국내 상황과 겹치는 부분이다.
보고서는 이 과정에서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일본 석화업계에서 총 3차례의 구조조정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수출 확대와 특화 소재(스페셜티)로의 사업 재편 등 여러 자구책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2000년대 대규모 구조조정과 사업 철수가 있기 전까지 효과적인 경쟁력 회복은 얻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제로섬 게임을 의식해 노후 설비 폐쇄·매각, 인력 감축을 미뤄온 결과였다.
더 큰 문제는 국내의 경우 일본과 같은 대규모 구조조정 상황에서 이를 중재할 심판이 없다는 점이다. 일본에선 경제산업성이 업체들을 감독하며 철수 시점에 따른 이익과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독과점 방지법의 영향으로 부처의 개입과 업체 간 논의가 어렵다.
조용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을 따라잡던 우리가 이젠 중국과 중동에 쫓기고 있다"라며 "일본의 경우 당시까지 독과점 방지법에 대한 인식이 약해 업체간 논의할 수 있었지만 우린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석화업계 관계자도 "외환위기 시절처럼 정부 주도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라며 "누군가는 이득을 볼 텐데 서로 양보하면서 구조조정을 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3일 산업통상자원부 주재로 '석유화학산업 위기 극복 방안 논의'가 열렸다. 주요 업체가 참석한 간담회에선 원재료 관세 면제 연장, 산학연 협의체 출범 등이 논의됐으나 실질적인 구조개선 방안은 등장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