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 있을까.”
1961년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츠가 기상 관측을 하던 중 떠올린 질문입니다. 여기서 비롯된 '나비효과'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처럼 미세한 변화나 사건이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가 됐습니다.
요즘 반도체 업계엔 조금은 다른 형태의 '나비효과'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두 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의 말 때문입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 20일 이천포럼에서 "당분간 호황이 예측되지만, 다운턴(하락국면)을 고려하면 안심할 수 없다"고 했고 전영현 DS사업부장(부회장)도 지난 5월 취임 후 내부 소통망에 올린 메시지에서 "새로운 각오로 어려움 극복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습니다.
'반도체 호황'에 여유를 보여도 될 때 언급한 '어려움'과 '위기'는 직원들에게 폭풍이 됐습니다.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경영진이 직접 우려를 표하니 우리도 덩달아 신경 쓰인다. 작년이 워낙 힘들었고 다운턴 주기도 빨라져 언제 또 안 좋아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다"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직원의 우려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동안 반도체 슈퍼사이클(호황기)은 평균 4~5년 주기였습니다. 반도체 최대 수요처인 PC와 스마트폰 기기들의 교체 주기에 따라 나타난 반도체 주기였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난해 다운턴을 끝내고 올해 슈퍼사이클을 맞을 거란 기대감을 내비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이클이 달라졌습니다. 인공지능(AI) 시장 확대로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고 주기는 짧아지면서 시장을 예측할 수 없게 된 거죠.
SK하이닉스 분위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한 재직자는 "AI 거품론이 계속 나오니 주변에서 회사 주식 얘기를 한다. 주식이 없어도 주가를 확인하는 상황"이라며 일종의 '주가 강박'에 시달리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경영진의 말은 경계를 넘어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서 신소재공학을 전공하는 서모씨(25)는 "저도, 제 동기들도 반도체 회사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요즘은 많이 줄었다"고 말합니다.
성과급이 높아 취업 준비생에게 인기 있던 반도체 회사들의 지난해 성과급이 '0%'라는 소식이 돌면서 매력이 떨어졌다는 겁니다.
"다들 요즘엔 메리트가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서씨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이쯤 되니 반도체 '호황'이란 말이 한없이 가벼우면서도 위태롭게 느껴집니다. 예상치 못한 폭풍을 부를지 모를 팔랑이는 나비의 날갯짓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