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세계 각국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는 가운데 국내에도 '한국형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여야간 정쟁이 끊이지 않는 시국에 산업계 우려만 깊어지는 상황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과 대만은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한 법안을 속속 처리하고 있다. EU는 2500억 유로(약 334조원) 규모 '그린딜' 계획을, 대만은 산업혁신조례 수정안(반도체 지원법) 등을 각각 추진한다.
세계 각국이 산업 관련 법안 개정에 나서는 이유는 미국이 지난해 발효한 IRA에 대응하는 차원이다. IRA는 미국이 지난해 발효한 법으로 녹색 에너지 분야에 3700억 달러(약 470조원) 보조금을 주는 것과 미국에서 만든 전기자동차(EV)와 배터리에 감세 혜택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미국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계획에 보호주의 성격이 강하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EU가 추진하는 그린딜은 온실가스 배출 감소 기업에 대한 규제 간소화와 세금 감면이 주요 내용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4일 그린딜 계획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경쟁이 필요하다. (법안) 목표는 단일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경쟁에서도 공정한 경쟁의 장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이 지난달 통과시킨 반도체 지원법은 대만 내 반도체 기업의 연간 연구개발비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높여 자국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안이다. 대만 경제부는 지난달 개정안 통과 직후 "미국, 일본, 한국, 유럽연합(EU)이 모두 자국 내 공급망 구축을 위해 대규모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어 대만도 핵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며 "새로운 법안은 대만 기업들이 자국에 뿌리를 내리도록 장려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국 지원 확대에 나서는 위 국가들과 달리 우리 정치권은 이제야 논의를 시작하는 모양새다. 과반 이상 의석을 확보해 자체 처리가 가능한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한국형 IRA'에 대한 언급을 내놓고 그린산업 육성 등 내용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에서는 여야간 정쟁에 밀려 법안 처리가 멀어짐은 물론 의미있는 수준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마련된 이른바 'K칩스법' 처리 당시에도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법안이 8%로 축소돼 통과됐다.
이후 윤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한 뒤에야 기획재정부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마련해 반도체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을 높였다. 개정안은 반도체·배터리·백신·디스플레이 등 국가전략기술의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기준 8%에서 15%로 확대하고, 중소기업의 경우 세액공제율은 16%에서 25%까지 상향되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달 중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지만 각종 사안에서 반대를 잇는 민주당 동의가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부 여당에서는 정부 조직법과 반도체 특별법 등 안건을 내세워도 과반 의석이 넘는 야당 협조가 이뤄지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법안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 소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등 정치권 이슈가 가득한 상황에 산업 지원법 통과는 더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