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중에 "우린 전기료 걱정 없이 에어컨을 튼다"는 이상한 아파트 단지가 있다. 아파트 주민인 A씨(70·여)는 '에어컨을 켜는 데 부담 없었냐'는 질문에 "요즘 같은 날씨엔 에어컨 없이 잠도 못 잔다. 에어컨을 많이 틀어도 한 달에 몇 천 원 정도 덜 내니 서민들에겐 큰 도움"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부터 인터넷엔 '전기 요금 폭탄'을 호소하는 글들이 올라오는 가운데 A씨처럼 에어컨을 마음껏 틀고도 전기요금 부담이 크지 않다는 내용의 글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이들이 저렴한 전기요금의 비결로 꼽은 건 뜨거울 때 더 빛을 발한 태양광 모듈이었다.
확인을 위해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를 찾았다. 베란다마다 태양광 모듈이 빼곡히 설치돼 있었다. 서울시가 지난 2012년부터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의 일환으로 공동주택에 미니 태양광 설치 금액을 지원해 주는 혜택을 이 아파트도 받았다.
A씨도 "태양광 모듈을 설치한 덕분"이란 말을 꺼냈다.
태양광의 전기요금 절감 효과는 바로 길 건너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B씨(50·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이번 달에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많이 틀었는데 한 7만원 넘게 나온 것 같다"며 "아껴 쓴다고 하는데도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답했다.
서울시에 의하면 2022년 서울 지역 가구당 전기 사용량은 월평균 296킬로와트시(㎾h)였다. 하계(7~8월) 누진 1단계(300㎾h 이하)로 전기료를 환산하면 3만1810원(주택용 고압기준)이다. 만약 무더위에 소비전력 1㎾h의 에어컨을 하루에 4시간씩 추가 가동한다고 하면, 한 달 사용량은 416㎾h에 누진 2단계(300~450㎾h)를 적용받아 월 전기료는 7만3644원으로 불어난다.
만약 베란다에 미니 태양광을 설치한다면 한 달 발전량 약 40㎾h를 전체 사용량에서 줄일 수 있다. 이럴 경우 전기 사용량은 376㎾h, 전기료는 6만6684원까지 줄어 총 6960원을 절약할 수 있다.
가구 구성원이 많아서 전기 사용량이 평균치보다 높으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사용량이 450㎾h가 넘어갈 경우 누진 3단계가 적용돼 기본 요금은 1260원(2단계)에서 6060원으로 4.8배 오르고, ㎾h당 요금은 174원(2단계)에서 68.3원(39.3%) 오른 242.3원이 된다. 태양광이 누진 단계가 오르는 걸 막아 전기료 절감의 일등 공신 역할을 하는 이유다.
태양광의 역할은 아파트 공용 전기료를 줄이는데도 한 몫했다. A씨가 거주한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지난 달 아파트 내 공용 전기 사용량이 약 2만4000㎾h인데 , 이 중 25%가량을 공동 태양광 시설로 충당했다. 아파트의 월 공용 전기료가 약 500만원인데, 이를 전체 가구 수(1600가구)로 나누면 주민당 요금은 3125원이다. 태양광 덕에 공동전기료를 약 1000원씩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아파트 내 공용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는 건 베란다 더 어렵다. 현행 규정상 옥상이나 난간 등 아파트 공용 공간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려면 전체 소유자의 70%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동의의 대상이 거주민이 아닌 소유자라는 점에서 세입자 비율이 높은 아파트의 경우 동의 자체를 받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태양광 모듈은 임대주택을 위주로 늘어났다. 임대주택은 한국토지주택공사나 서울주택도시공사 등 공기업에서 소유권을 가지고 있어, 절차상 어려움이 적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까지 서울시에서 태양광 모듈을 설치한 12만 가구 중 4만7000가구(39.2%)는 임대주택이었다. 앞서 A씨가 거주하는 아파트도 임대주택이고 맞은 편 B씨의 아파트는 민간분양 아파트다.
태양광 모듈이 일반 공동주택까지 확충되기 위해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안명균 경기시민발전협동조합협의회 회장은 "공동주택 표준 관리 규약을 태양광 설치에 용이하게 변경하거나, 아파트 건설 시 태양광 설치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국민 대부분이 공동주택에 사는 상황에서 기후위기 대응과 전기료 절감이란 일석이조의 효과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