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데일리] 유통업계에 부는 ‘여풍(女風)’이 심상찮다. 옛날 인력 구조 상층부를 보면 여성 임원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였으나, 최근 들어선 여성 최고경영자(CEO)의 모습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은 오너 일가 출신이 아닌 업무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은 것으로, 이들이 기업 내 ‘구원투수’로 떠오르면서 경영 전면에 배치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이 여성 인재를 전면에 앞세우는 이유는 유통 소비의 주체가 대부분 여성인 만큼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다. 이에 따른 성과와 능력으로 경영에 두각을 보이면서 기업 간 앞다퉈 여성 인재 모시기에 열중이다.
한샘은 오는 8월 1일부로 김유진 IMM코퍼레이션즈본부 본부장을 신임 대표집행임원(이하 대표)으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한샘의 최대주주인 사모펀드(PEF) 운용사 IMM프라이빗에쿼티(PE)는 발탁 배경으로 “경영 효율성을 제고하고 기업가치 상승 과제를 이끌 리더로 김 신임 대표가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IMM PE의 ‘특급 소방수’로 통하는 김 신임 대표는 40대 젊은 여성 CEO다.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대학원(MBA)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을 거쳐 2009년 IMM PE에 합류해 할리스에프앤비, 레진코믹스, 태림포장 등의 인수합병(M&A) 거래를 주도했다.
매각을 앞둔 IMM PE 포트폴리오 수익성을 대폭 끌어올린 이력이 주목받는다. 김 신임 대표는 지난 2017년부터 할리스에프앤비 대표를 맡아 직접 경영하다가 2020년 KG그룹에 성공적으로 매각했다. 3년간 매출은 2016년 1286억원에서 2019년 1649억원까지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27억원에서 155억원으로 늘었다.
이후 2021년 6월 에이블씨엔씨 수장에 오른 김 신임 대표는 2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던 회사를 1년 만에 흑자전환시켰다. 에이블씨엔씨는 2021년 영업손실 224억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1분기부터 흑자전환해 연간 영업이익 100억원을 달성했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는 처음으로 여성 CEO를 발탁하기도 했다. 1975년생인 안정은 사장은 이커머스 서비스 기획 전문가다. 야후코리아를 거쳐 네이버 서비스기획 팀장, 쿠팡 PO(Product Owner) 실장, 엘에프(LF) e-서비스기획본부장을 맡으며 경력을 쌓았다. 그는 현재 하형일 각자 대표와 함께 11번가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11번가 최고운영책임(COO)을 맡으며 서비스 총괄 기획과 운영을 담당했다. 11번가의 차별화 서비스들은 모두 안 대표의 손을 거쳤다. 지난해 출시한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라이브11’, 연간 500만건의 동영상이 리뷰로 쌓이는 ‘꾹꾹’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또 올해 초에는 11번가의 익일배송 서비스 ‘슈팅배송’, 이커머스 최초 마이데이터 서비스 ‘머니한잔’ 등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신규 서비스 기획에 집중한 바 있다.
11번가의 오픈마켓 사업의 영업실적은 2월부터 개선되기 시작해 6월에는 전년 대비 70억원 이상 개선되며 흑자전환했다. 오픈마켓 사업 기준 올해 상반기의 영업손익은 전년 동기 대비 290억원 이상 개선됐다.
글로벌 담배 기업도 여성 CEO 확대에 나섰다. 한국필립모리스는 지난 5월 1일 윤희경 호주필립모리스 대표를 선임했다. 윤 대표는 필립모리스 내 대표적인 전략·재무 전문가로, 풍부한 국제경험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4년 글로벌 증권사 인수심사자(언더라이터)로 커리어를 시작한 윤 대표는 1997년 한국필립모리스에 합류해 대외 협력, 비즈니스 전략, 예산 관리 업무 등을 맡아왔다. 이어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말레이시아, 스위스, 홍콩 등에서 근무하고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스위스 필립모리스 글로벌 본사의 재무 분석 및 지원 담당이사를 역임했다.
윤 대표는 2016년 필립모리스 아시아 지역 재무 및 기획 부사장, 동아시아·호주 지역 재무 및 기획 부사장을 역임하고 2019년부터 호주필립모리스의 재무·영업 전략을 총괄했다. 2021년부터는 호주필립모리스 대표이사로서 호주·뉴질랜드·태평양 제도 지역 비즈니스를 이끌었다.
이 외에도 국내 여성 임원 비중은 점진적으로 늘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분기보고서를 제출한 기업 349곳을 분석한 결과 전체 임원 중 여성 비중은 6.8%로 나타났다.
분석 결과를 보면 이들 기업의 올 1분기 전체 임원은 1만4718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여성 임원은 6.8%인 997명이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912명)보다 0.5% 증가한 수준이다.
사외이사만 놓고 보면 여성 숫자는 전년 동기 대비 9.8% 늘어난 212명으로 집계됐다. 사내이사의 경우 여성 비율이 2.3%로 작년과 비교할 때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같은 기간 여성 사내이사는 28명에서 30명으로 단 2명 증가했다.
업종별로는 생활용품 업종에서 여성 임원 비중이 가장 크게 조사됐다. 생활용품 업종의 여성 임원 비중은 20.6%였다. 이어 제약 14.8%, 서비스 12.5%, 유통 11.8%, 식음료 10.4% 순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여성 임원은 종종 나오기는 했지만, 여성 대표가 흔치 않았다”며 “최근 여성 임원 발탁이 증가세를 보이는 만큼 활동 범위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